[이상중 목사] 내가 너를 파수꾼으로 세웠다 – 2026년 01월 11일
에스겔서 3장 16-21절, 마태복음서 4장 12-17절, 사도행전 4장 13-21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신뢰하며, 언제 어디서나 평안을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생명의 틈이 되는 교회”라는 표어로 2026년을 시작했습니다. 꽉 막힌 벽과 같은 세상에 숨구멍을 내고,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곳에 생명이 살아날 수 있는 틈의 공간이 되어주는 공동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을 위해 무엇을 결단하고, 내 삶을 어떻게 비틀어 빈 틈을 내어야 할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에스겔은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절망의 땅,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에스겔의 상태가 좋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은 본문의 바로 앞 본문 내용을 보면 에스겔이 ‘얼이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라고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14 주님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서 데리고 가실 때에, 나는 괴롭고 분통이 터지는 심정에 잠겨 있었는데, 주님의 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15 나는 델아빕으로 갔다. 그 곳 그발 강 가에는 포로로 끌려온 백성이 살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레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얼이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에스겔은 왜 얼이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었습니까? 이미 망하고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심판 선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일주일 동안 심판의 대상인 백성들의 삶의 자리(델아빕)에 앉아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몸소 체험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보낸 에스겔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못하는 괴로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의 현실 사이에서 선지자가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통이 에스겔로 얼이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을 얼이 빠진 채 두지 않으시고, 다시 에스겔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촉하셨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사람아, 어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가 하는 바로 이 말을 그들에게 전하여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다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파수꾼, 이 파수꾼이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신 정체성입니다. 파수꾼은 어떤 일을 합니까? 모두가 잠들어 있거나 일상에 빠져 있을 때, 홀로 깨어 다가오는 위험(심판)을 먼저 감지하는 사람입니다. 성벽 위나 높은 망대에서 적이 오는지, 혹은 전령이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여 멀리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은 이렇게 위험이나 소식을 ‘눈’으로 감지하고 나팔을 불어 경고하고 알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에스겔에게 부여하신 ‘파수꾼’의 역할은 조금 다릅니다. 멀리서 소리로 알리는 자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 역할입니다.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하여라.”
그런데 이 파수꾼의 역할이 매우 무겁습니다. 그 어떤 선지자에게 들려주신 적이 없었던 말씀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셨습니다.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할 때에, 네가 그 악인을 깨우쳐 주지 않거나, 그 악인에게 말로 타일러서 그가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 생명이 구원 받도록 경고해 주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신의 악한 행실 때문에 죽을 것이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너에게 묻겠다. 19 그러나 네가 악인을 깨우쳐 주었는데도, 그 악인이 그의 악한 행실과 그릇된 길을 버리고 돌아서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악행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네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네가 그 악인을 깨우쳐 주지 않거나, 그 악인에게 말로 타일러서 그가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 생명이 구원 받도록 경고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너에게 묻겠다.”
악인에게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에게도 가라고 하셨습니다. “20 또 만약 의인이 지금까지 걸어온 올바른 길에서 떠나서 악한 일을 할 때에는, 내가 그 앞에 올무를 놓아, 그 의인 역시 죽게 할 것이다. 네가 그를 깨우쳐 주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지은 그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미 행한 의로운 행실은 하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너에게 묻겠다.”
미리, 의인이 악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깨우쳐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21 그러나 의인이 범죄하지 않도록 네가 깨우쳐 주어서, 그 의인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그는 경고를 달게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살게 되고, 너도 네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악인에게도 가서 말하고, 의인에게도 가서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책임을 반드시 너에게 묻겠다.’라고 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겔의 선포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 이미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바로 그 자손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다. 듣든지 말든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것만은 알게 될 것이다.”(에스겔 2:4-5)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상태입니다. 반역하는 족속이고, 하나님의 선포를 귀 기울여 듣는 족속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들에게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죽으면, 나 혼자 고상하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방관했던 나 역시 그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에스겔의 본문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의 자유로울 수 없는 책임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생명, 평화, 정의에 관해 말할 때 그리고 우리가 매일 같이 고백하는 생명사랑 신앙고백문을 노래하고 고백할 때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지키며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생명·평화·정의에 따라 살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날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생태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에 육신의 편함과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눈을 감고 침묵하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침묵한다면, 세상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자녀들도 함께 죽게 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일회용품 쓰지 않고, 냉난방기 덜 쓰는 등의 개인적인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이 창조 세계가 획기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업, 나라들이 벌이는 반 생태적인 일과 전쟁을 막고 경고하는 일이 이 창조 세계를 살리는 더 확실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파수꾼으로서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일상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업과 나라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끊임없이 깨우치는 일입니다.
나와 우리 후손의 목숨이 악인의 깨우침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그들과 함께하며, 때로는 위협을 당하더라도 끊임없이 경고하고 선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깨우치고 돌아서야 우리의 삶도 안전하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우리는 에스겔과 같은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직수련회를 이와 관련해서 준비했습니다. 유대은 목사님이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로 삶과 세상을 대하고, 행해야 할지 쎄게 알려주실 겁니다.
어제 육성한 목사님이랑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신이 진보한 곳, 무엇이든 이야기해도 받아들여 주시는 곳에서 사역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죠.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래서 더 오늘 제직수련회가 우리에게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생명사랑교회 제직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저와 성도님들이 함께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에스겔과 함께 읽은 마태복음, 사도행전에는 예수님과 베드로, 요한이 등장합니다. 이 세 사람이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바로 파수꾼의 역할입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을 잡아들인 헤롯이 통치하는 구역인 갈릴리로 예수님은 되돌아가셨습니다. 스스로 위험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향해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태복음 4:16-17)
헤롯의 치하에서 척박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사는 변방, 예수님은 바로 그 가장 어두운 곳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요한은 또 어떻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의 부활을 내세워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선전하고 있는 것에 격분해서, 사도들을 붙잡았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다음 날까지 가두어 두었다.”(사도행전 4:1-3)
하나님의 도를 말하다가 기득권자들에게 무력으로 제압당했습니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협박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들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고, 우리도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앞으로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합시다.””(사도행전 4:16-17)
이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체제와 안위를 지키기 위해, 예수의 부활과 생명의 도를 전하는 사도들을 위협합니다. “입 닥쳐라. 조용히 해라.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행전 4:19-20)
오늘날 세상도 우리에게 똑같이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예배해라.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라. 경제 논리에 방해되는 환경 이야기, 생태 이야기는 꺼내지 마라.“
예수님의 첫 사역지였던 갈릴리처럼, 참된 파수꾼은 안전한 성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장 짙은 곳,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 곳, 파괴되어 신음하는 자리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의 방향을 돌이키라(회개)’고 선포합니다.
에스겔의 책임감, 사도들의 용기, 그리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의 발걸음. 이 세 가지가 합쳐진 모습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파수꾼’입니다. 이것이 2026년을 살아가는 성도의 태도입니다.
파수꾼은 계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 생명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기에, 입을 다물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설령 그것이 나에게 불이익이 되고, 위협이 된다 할지라도 진실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용기, 이것이 파수꾼의 자격입니다.
물질 중심의 사회에서, 편리함이 선이라고 가르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태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일회용품을 거절하고,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는 삶은 귀찮고 힘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련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 비로소 세상에 경고의 나팔을 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는데, 누가 우리의 외침을 듣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가치를 거스르는 ‘불편한 삶’, ‘대안적인 삶’을 살아낼 때, 그것 자체가 세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파수꾼의 외침이 될 것입니다.
“나의 왕국을 세우자”고 외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기꺼이 불편해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회개할 때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세우신 생명의 파수꾼으로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