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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중 목사]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라. – 2026년 03월 08일

예레미야애가서 5장 20-22절, 요한계시록 2장 2-5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우리 안에 없어서, 외부에서 가져와야 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평안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평안하지 못하다면, 이미 주어진 평안을 다시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평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평안을 누리겠다는 용의用意만 내면 됩니다. 잠시 눈을 감고 ‘이 시간 성령님과 함께 평안 누리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평안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헛된 것들에 눈을 돌리지 않고, 무엇을 해야 누릴 수 있다는 마음도 버리고, 이미 내 안에 주어진 참 평안을 다시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셋째주일이자 청년 주일입니다. 청년 주일은 우리 교단이 탄생한 1953년 제38차 교단 호헌 총회에서 청년 주일로 성수 할 것을 결의한 후부터 매년 기념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올해(2026년)는 일흔세 번째 청년 주일입니다.

청년 주일은 청년 선교의 의미를 되새기고, 말씀과 기도로 지원하며, 재정적 후원을 통해 기장 청년 선교 활성화를 위해 연합하여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교회 구성원으로 청년을 세우는 날입니다. 청년들이 주변부에만 머물도록 한 교회 구조가 있는지, 소모만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청년의 신앙으로 교회와 사회에 사명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청년의 신앙’은 단순히 청년이라 칭할만한 연령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청년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기장 교단 성도님들의 기도와 지원을 통한 청년 선교에 동참하는 날입니다. 교단의 모든 교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연합하며 청년들이 하고자 하는 사역에 힘을 실어주고 재정적 지원을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청년 주일을 위해 교단 청년회 전국연합회에서 지은 2026년 표어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기장 청년처럼’입니다.

사실 처음 이 표어를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청년스럽지 않은데’ 뭔가 내 나이대에서 지은 표어처럼 들리는데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청에서 배포한 자료집의 기도문을 읽고서는 왜 이들이 이런 표어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표어의 의미와 방향성이 자료집의 기도문에 너무나 잘 담겨 있어서 성도님들께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문장부터 인상적입니다.

“모든 것을 이윤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라는 거센 물결 속에서도, 각자도생하지 않고 예수님의 몸 된 공동체로 불러 모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흐름에 무기력하게 휩쓸리지 않고 진실을 노래하기 위해 모였사오니 우리의 다짐과 예배를 기뻐 받아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의 물살은 너무나 가파릅니다. 자본과 경쟁의 척박한 세류(世流)는 우리를 끊임없이 몰아세우며, 이웃을 밟고 혼자서라도 살아남으라고 속삭입니다. 삶의 무게와 피로감에 떠밀려 갈 때,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맞잡고 버텨낼 힘을 주옵소서. 혼자서는 떠내려갈 수밖에 없으나, 함께 기대어 거슬러 오를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모이는 곳마다 생명과 평화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세상에 저항할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효율과 자본의 논리가 생명의 존엄을 짓밟는 이 땅의 불의를 넘어, 소외된 자들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이루어 주옵소서. 체제의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외면하는 거대한 사회적 흐름에 맞서, 교회가 보여주었던 조건 없는 나눔과 환대로 시대의 물줄기를 돌려세우는 기장 청년들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모이는 이 시간이 그저 세상을 도피하는 위로로 흩어지지 않게 하소서.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랑은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대안이 되게 하소서. 서로를 향한 계산 없는 사랑과 격려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게 하소서.

우리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꿈을 꿉니다. 거센 세상의 물결 속에서도 우리의 든든한 반석이 되시며, 함께하는 걸음마다 함께하시어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예수, 청년의 또 다른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장 청년 주일의 표어가 어떤 노래 제목을 떠올리게 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강산애씨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입니다

이 노래의 탄생 배경이 ‘크리스천투데이의 기사’에 잘 기록되어 있어서, 이 글을 성도님들께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97년 한국이 IMF로 힘들어할 때, 모 방송사에서 강산에 씨에게 ‘힘이 될만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 후 연어에 대한 다큐를 보던 중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물고기가 민물에서 태어나면 민물에서, 바다에서 태어나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는데, 연어는 민물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하더니, 다시 자신이 태어난 민물로 바다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삶을 마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강산에 씨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라는 노래를 만들어냈습니다.

연어가 거슬러 올라갈 때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겠지요. 나는 왜 거꾸로 거슬러 가야 하는가?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중간에 만나는 무수히 많은 물고기들은 만류했겠지요. “바다가 좋아. 이곳이 넓어. 너는 여기에서 충분히 살 수 있어.”, “거스르지마. 그냥 여기 맞춰서 살아. 왜 거꾸로 올라가려 하니?”, “넌 참 별나. 고집이 불통이야.”, “너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의 길이 막혀.”

그러면서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에게는 무슨 꿈이 있을까. 연어들에게는 고민이 없었을까.”(크리스천투데이 ‘류한승의 러브레터’ 2020년 기고문 중 일부)

연어에게 무슨 꿈이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해 다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돌아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 땅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세상의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까?

오늘 예레미야애가와 요한계시록 본문을 통해 우리가 연어처럼 무엇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또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예레미야애가의 첫 구절은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1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예전에는 뭇 나라 가운데 으뜸이더니 이제는 과부의 신세가 되고, 예전에는 모든 나라 가운데 여왕이더니 이제는 종의 신세가 되었구나. 2 이 도성이 여인처럼 밤새도록 서러워 통곡하니, 뺨에 눈물 마를 날 없고, 예전에 이 여인을 사랑하던 남자 가운데 그를 위로하여 주는 남자 하나도 없으니, 친구는 모두 그를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는가! 3 유다가 고통과 고된 노역에 시달리더니, 이제는 사로잡혀 뭇 나라에 흩어져서 쉴 곳을 찾지 못하는데, 뒤쫓는 모든 자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그를 덮쳐 잡는구나.”(예레미야애가 1:1-3)

유다 백성들의, 예루살렘의 비참한 모습이 읽어드린 본문 이후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백성들과 선지자들은 ‘왜 이러한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왔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14 주님께서 내가 지은 죄를 묶고 얽어서 멍에를 만드시고, 그것을 내 목에 얹어서 힘을 쓸 수 없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내가 당할 수 없는 사람의 손에 넘기셨다. 15 주님께서 내 청년들을 무찌르시려고 내게서 용사들을 모두 몰아내시고, 나를 칠 군대를 일으키셨다. 주님께서 처녀 유다를 술틀에 넣고 짓밟으셨다. 16 이 일로 내가 우니, 눈에서 눈물이 물처럼 흐른다. 내게 생기를 되돌려 주고 위로하여 줄 이가 가까이에 없다. 원수들이 우리를 이기니, 나의 아들딸들이 처량하게 되었다.”(예레미야애가 1:14-16)

그리곤 1-4장을 넘어 5장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레미야애가의 마지막 본문이 나옵니다. “20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며,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오래 버려 두십니까? 21 주님,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 22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

여전히 유다 백성, 예루살렘 백성의 삶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제발 진노를 풀어달라고, 제발, 버리지 말아 달라고, 제발 다시 새롭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예레미야애가는 끝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디에서부터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기에 이런 심판을 당했습니까? 거대한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습니다.

무엇을 더 사랑했습니까? 다른 강한 나라들의 신을, 고아와 과부, 나그네 등 사회적 약자들을 착취하며 챙긴 이익과 권력을 사랑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모습 아닙니까? 청년들의 기도문에도 나와 있었지만, ‘모든 것을 이윤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라는 거센 물결’이라는 우상 그리고 그 우상을 섬기며 약자들을 착취하는 사회, 억울한 이들을 돕는 법이 아니라 강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유지 시키는 법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거센 물결에 교회도, 성도도 거스르지 않고 휩쓸리어 살아갑니다. 오히려 더 빠르게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대안이 되어야 할 교회조차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이 세상이 회복될 겨를이 없이, 더 처참해질 뿐입니다.

  •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 관련 소식 : 최근 들려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 소식은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강한 국방력과 더 큰 파괴력이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힘의 논리’가 온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과 전쟁에 기독교 국가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자명하게 드러났습니다.

  •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를 지켜주지 못한 법 : 우리 곁에는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밀려난 이들이 있습니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 섞인 투쟁이 그것입니다. 자본의 논리는 ‘경영이 어려우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법조차 강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정당화 해주곤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존재합니다.

  • 모든 힙합의 가사가 돈으로 채워져 있는 현실 : 요즘 청년들이 즐겨 듣는 힙합 음악의 가사를 보십시오. 대부분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어떤 비싼 차를 타는지’를 자랑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제는 예술조차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돈이 곧 성공이고 인격인 것처럼 말합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 청년들은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무력감에 빠집니다. 우리는 이 화려한 유혹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유일한 가치임을 삶의 노래로 증명해 내야 합니다.

힘, 돈, 권력이 세상의 중심이 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힘, 돈, 권력이 삶의 핵심이 아님을 교회 공동체의 삶을 통해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 닿아야 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청년 정신입니다. 청년은 단지 나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하나님 나라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청년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3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냈으며, 낙심한 적이 없다.” 에베소 교회는 칭찬받을 만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칭찬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지난 과거의 수고는 지나가고 이제 에베소 교회는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이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과거의 수고는 헛 된 영광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오늘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어디에서부터 떨어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버리게 되었습니까?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이 사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감정적인 교류를 말하는 것입니까? 요한1서 2:15-16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바로 하나님만을 섬기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세상에서 온 것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돈을 섬기고, 이익을 섬기면서 이웃, 고난받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둘 다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한쪽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미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5a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연어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다시 자기가 태어난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난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연어는 기필코 가고 맙니다.

오늘 우리는 청년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이윤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라는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 일이 바로 성도가 처음에 하던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제국주의와는 다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삶입니다.

예레미야애가에 나오는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지 않고,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를 깨달아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촛대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촛대 위에 불을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에게는 촛대가 옮겨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면, 교회가 세상과 똑같이 돈과 성공을 사랑한다면, 교회가 약자를 외면하고 강자의 편에 선다면, 교회는 더 이상 빛이 아닙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라.” 이것은 책망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다시 처음 사랑으로 돌아오라는 초대입니다.

연어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지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청년들입니다. 이 청년 주일에 우리의 청년들이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역시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응원하며 함께 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 나라에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