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강미희 전도사] 거룩한 신앙 공동체 – 2022년 9월 4일

에스더기 9장 20-23절, 시편 61편 1-4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7-12절

[창립기념주일을 지나며]

  우리는 지난주 생명사랑교회가 한 교회로 태어난 지 10주년을 맞이하며 교우들과 함께 축하를 나눌 초대 손님들과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지난 추억을 나누었고, 즐겁고 행복이 가득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아주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하루가 각자가 겪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고,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안타까웠던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처음 이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어떤 교회를 만들어갈지 다짐했던 것을 상기시켰을 것입니다.

  지금 생명사랑교회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은 처음 이 교회와 함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그때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우리의 발걸음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다짐하는 날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온 지 3년이 조금 지났는데, 제가 이 교회의 시작을 같이한 사람은 아니지만, 10년 동안 이 교회가 걸어온 순간이 기록된 사진과 그 사진 속 교우들의 표정을 보며 조금이나마 그 세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동안 생명사랑교회에서 교우들과 함께 한 /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배웠던 시간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3년 동안 훌쩍 커버린 어린이,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좋은 신앙인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거룩함을 향한 삶-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사는 삶]

  오늘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는 우리가 앞으로의 날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방향성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고, 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 우리는 세상의 더러움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신앙인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함에 이르게 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우리를 이 자리 가운데 불러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중요한 항구 도시였고, 로마의 총독이 파견되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발칸반도를 횡단하고,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였던 ‘에그나티아 도로’와 연결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존재하였고, 특히 종교적으로는 혼잡하던 곳이었습니다. 로마의 종교사상 영향 아래 있었기에 이 도시는 다양한 신들을 섬겼고, 각자의 신을 전하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거룩한 삶인지 구별하고 선택하기란 어렵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바울은 그곳에 있는 데살로니가교회 사람들에게 그 혼잡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옳다고 말하지만, 그 실상은 옳지 않은 것에 빠져 살지 말고, 구별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세계의 소식을 듣고, 여러 교통수단으로 세상 곳곳을 오고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문화를 알 수 있고,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더 많고 빠르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많은 문화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힘들 정도입니다. 많은 정보만큼 더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게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 역시 많아지고, 다양한 문화는 서로의 다름을 더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비례하여 정보와 매체가 힘이 되어버린 이 시대는, 이전보다, 진실인 것처럼 포장된 거짓 정보가 수없이 널려있고, 누군가를 속이며 자신의 이익을 좇는 자들도 많고, 돈과 욕망을 좇아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많아졌습니다.

  세상은 살기 더 좋아졌지만, 더 혼잡해졌고, 참된 진리를 구별하기는 더 어려워진 듯합니다. 더 교묘해져 버린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 찾기란 더 어려워졌습니다. 세대마다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달라지고, 이해의 정도도 다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어떤 세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것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생명과 평화, 정의이고, 성경에서 제일 된 계명이라고 말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잘 하고 있는 것 & 노력할 것]

  바울은 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혼잡한 세상 속에서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이 잘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교우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교우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잘 듣고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 부분에 대해, ‘여러분은 잘하고 있으니 교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잘하고 있는 것을 더욱더 잘하라고 권면합니다.

  교우들과 서로 사랑함으로 굳건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데살로니가교회 사람들은 그 사랑의 삶을 통하여 교우들 간의 신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여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함을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사람들처럼 생명사랑교회 교우들 사이에 그동안 쌓인 신뢰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뢰는 서로를 사랑하며 지내온 지난날의 결과물입니다.

  제가 겪은 생명사랑교우들은 누군가를 잘 믿어주고 신뢰해주고, 기다려주고,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전에 경험해 온 교회와 제 동료 교역자들을 통해 듣는 교회학교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인내로 잘 기다려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교역자나 선생님들의 정해진 틀에 아이들이 맞춰야 하고, 그것에 벗어난다면 혼이 났던 곳이었습니다. 또한 교회에 큰 행사에 아이들의 참여를 고려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의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게 누군가가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여깁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점점 더 입을 다물었고, 그런 조용한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컸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어른들과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서슴없이 할 말을 다 하고, 교회에 오는 것을 즐거워하는 생명사랑교회 어린이들을 보며 ‘아, 이 친구들이 좋은 공동체, 자신들을 이해해주고, 인내로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어른이 많은 공동체에서 잘 자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이 오늘 데살로니가교회 교우들에게 말한 대로 여러분은 서로 사랑에 대한 실천을 잘하는 분들입니다. 그 신앙 공동체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교우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힘입어 널리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잘 자라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를 더욱더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에 힘쓰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힘쓰는 공동체로 살아간다면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생명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것: 개인의 거룩한 삶]

  이런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우리는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또 그 각자가 온전히 잘 서 있어서 일상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잘 유지될 힘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무엇이 더러운 것인지 거룩한 것인지를 구별해 내기란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속에서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려면, 그 공동체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러움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지, 무엇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게 살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혼란함에 선동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란함 가운데 조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믿음을 굳건히 하고, 공동체 안에서 자발적인 존재로 거룩함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자기 일에 전념하고, 직접 일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일상적인 업무를 소홀히 함으로 다른 이에게 부담을 짊어주는 존재가 되면 안 되고, 교우의 사랑을 이용하여 공동체 구성원을 희생시키며 살아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에 힘써서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과는 구별된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또 세상의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말씀 위에 바로 선 존재가 됩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는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럽고, 거짓이 판을 쳐도 그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사랑을 품으며,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 배우며 거룩한 신앙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절기-주기적인 성찰]

  이런 개인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의 시작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주기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에스더기의 결론 부분은 한 절기를 제정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부림절’은 모세오경에 언급되지 않는 절기인데,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이 지켜서 즐기는 축제의 날입니다. 원래 이날은 하만이 유대 사람들을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일지를 정하기 위하여, 주사위의 일종인 ‘부르’를 던져서 나온 날 입니다. 이날은 원래 유대 백성들에게 희망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만이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뽑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만의 계획대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합니다.

  기세등등했던 하만이 몰락하고,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왕 다음으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 그들은 유대 백성들을 지키는 데 그 힘을 사용합니다. 이들은 하만이 유대인의 모든 것을 빼앗고자 했던 이날을 자신들을 위한 날로 바꿉니다. 왕의 조서를 바꾸어 유대 백성을 미워하는 자들을 없애는 날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죽음의 날을 승리의 날로 바꾼 것입니다.

  승리의 날을 만끽할 때도 유대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간의 억압과 고난으로 인해 눌려있던 것들이 표출되어 복수의 날들이 펼쳐졌지만, 그들의 재산까지는 빼앗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더 큰 폭력으로 갚지 않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데에 주목합니다. 그날을 유대 백성들은 자손 대대로 지키는 날로 제정합니다.

  이날은 유대인들이 적들로부터 구원을 받은 모든 지방에서 자신들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고, 초상날이 잔치날로 바뀐 것을 축하하며, 안도감과 환희를 표출하는 축제의 날입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선물을 보내며 기쁨을 표현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만들었습니다. 폭력의 날이 기쁨과 나눔의 잔치로 변화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날]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이 부림절을 제정하는 것에 찬성했던 것은 맞으나 오늘 함께 읽은 본문 23절과 그 이후의 본문을 살펴보면, 유대 백성들 스스로도 기꺼이 부림절을 명절로 제정하고, 자손 대대로 반드시 지켜야하는 날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날의 시작은 유배 간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두려움 가운데 감추어야할 것이 아니게 됩니다. 이 날은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되었고, 유대 백성들로 하여금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날이 된 것입니다.

[거룩한 신앙 공동체를 향하여]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스스로 우리의 신앙의 여정을 한번 돌아보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림절을 제정하며 그 구원의 날을 기억하고자 했던 유대 백성들과 같이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그 때를 기억하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사사로운 날들을 기억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즐기고, 소비하고, 욕망을 충족시키는 날을 기대합니다. 그런 날들은 나의 기쁨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날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기념하고 기뻐하는 날은 참 인생을 알게 된 순간, 참 자유를 경험한 순간, 그리스도인이 되는 거룩함을 경험한 순간입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 여러분의 삶의 어떠한 시간을 바로 이 순간을 기억하는 날로 제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지키는 기념일, 절기도 우리 신앙의 본질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 교회와 함께하는 분들에게 생명사랑교회 창립주일은 자신의 신앙의 여정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날이 될 것이고, 매년 찾아오는 부활절, 성탄절과 같은 절기는 그냥 지나쳐버리는 일상을 다시 돌이켜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중간 중간 멈추어서 나의 신앙이 처음 시작된 날, 내 신앙에 큰 변화가 있었던 날,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든 것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소망합니다.

  그 날을 지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본다면, 오늘 시편 기자의 노래처럼 우리의 앞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여주셨던 하나님을 우리는 놓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순간을, 구원의 날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활동할 때, 사도 바울이 권면한 그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데살로니가교회 사람들처럼 교우들에 대한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는 우리는 더욱더 그 사랑을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든 우리 공동체가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품위 있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혼란한 이 세상에서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를 찾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걷어내며, 거룩한 신앙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참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혼란스러운 세상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비추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우리 교회가 세상의 혼란함에 선동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우리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거룩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