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글: 한문덕 목사

목소리: 육성한 전도사

반주: 박지형 집사

40. 우는 소리

가죽부대에 담아 온 물이 다 떨어지니, 하갈은 아이를 덤불 아래에 뉘어 놓고서, “아이가 죽어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면서,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져서, 주저앉았다. 그 여인은 아이 쪽을 바라보고 앉아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하나님이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부르며 말하였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하갈이 샘을 발견하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아이에게 먹였다.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셨다. 그는 광야에 살면서, 활을 쏘는 사람이 되었다. (창세 21: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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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와 하갈 사이의 갈등 속에서 결국 하갈이 쫓겨납니다. 처음부터 하갈은 아브라함의 정실이 될 수는 없었지요. 대를 잇기 위한 씨받이의 역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모든 여성은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또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는 이가 있습니다. 사라는 아들 이삭을 낳자 곧 가부장적 질서에 편승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습니다. 하나님조차도 이것에 동의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서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지배자의 관점에서 수록된 모든 기록 사이사이 기억될 수 없었던 이들의 한 맺힌 울음들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가죽부대 하나에 물과 먹거리를 받아들고 쫓겨난 모자는 이내 광야 한 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할 위기에 처하게 되고, 아이가 죽어가는 꼴을 볼 수 없었던 어미의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려 통곡 소리만 들리게 됩니다. 어미의 울음에 아이마저 눈물을 터뜨립니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이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이와 함께 하십니다.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에서 주목할 지점 중에 하나는 하갈이 애굽 출신이고 후에 이스마엘도 애굽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성서를 기록하는 유대인들의 기억 속 애굽은 자신들을 종으로 부려먹은 불구대천의 원수였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애굽이 자행했던 폭력이 사라와 아브라함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폭력은 악순환을 합니다. 이것을 끊어내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우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는 소리에도 아프지 않고, 고통에도 반응하지 않는 산송장 같은 인간이 되지 않도록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간직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우리 눈이 멀지 않도록 하소서. 우리 가슴이 차갑게 식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지 않도록 당신의 숨결을 부어 주소서. 우는 소리에 눈 깜짝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