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글: 한문덕 목사

목소리: 황혜성 집사

반주: 박지형 집사

42. 네 사랑을 바쳐라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창세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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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마지막 시험대 위에 섭니다. 오늘 하나님은 인간이 도저히 풀기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주신 것,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달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갑자기 등장해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리는 폭력적인 하나님과, 100세에 얻은 외아들을 데려가 살해해야 하는 두렵고 떨리고 괴롭고 힘들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이 이야기를 매우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고대 근동에서 유행하던 맏아들을 신께 바치는 인신 공양에 대한 항의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모든 성숙은 죽음의 체험을 통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끌어들여 일종의 성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키르케고어는 신의 명령 앞에서 모든 인간적인 윤리는 정지될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도 하지요. 도대체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삭 대신 양을 준비해 두셨고, 그래서 아브라함은 시험에 통과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시험이었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시험하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증명하다”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신앙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있어 또 다른 나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갑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정말로 너 자신을 내게 바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이고, 자기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명은 자기애를 넘어섭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입니다. 이 둘은 그렇게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아브라함은 이렇게 자기를 드림으로써 믿음을 보여 주었고, 아들 이삭 역시 자신을 바침으로써 그 믿음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릅니다. 우리를 통해 이루실 당신의 비밀스런 계획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에 매달려 있고, 우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라는 당신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허락해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