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글: 한문덕 목사

목소리: 김영균 성도

반주: 박지형 집사

65. 내 슬픔의 아들

그들이 베델을 떠나 에브랏에 아직 채 이르기 전에, 라헬이 몸을 풀게 되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였다. 아이를 낳느라고 산고에 시달리는데, 산파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셔요, 또 아들을 낳으셨어요.” 그러나 산모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산모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였다.(창세 3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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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창세기의 이야기는 야곱에게서 차츰 요셉의 이야기로 넘어갈 준비를 합니다. 37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요셉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전에 성서는 요셉의 어머니 라헬의 죽음(35:16-20)과 야곱의 아버지 이삭의 죽음(35:27-29)을 서술합니다. 이삭의 죽음은 매우 간략하게 서술됩니다. 이삭의 나이는 180살이었고, 목숨이 다하자 조상들 곁으로 갔으며,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안장하였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도합니다.

라헬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였는데, 둘째 아들을 낳으면서 목숨을 잃고 맙니다.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라헬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짓습니다. 이 이름은 ‘슬픔의 아들’, 또는 ‘고통 가운데 낳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에브랏 근처는 라마와 가까운 곳이었고, 그래서 자식을 생각하며 우는 라헬의 울음소리가 라마에서 들려온다는 표현이 생겼습니다(렘 31:15, 마태 2:17-18).

아버지 야곱은 아들 베노니의 이름을 불길하게 여기고 ‘오른손 같은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으로 고쳐 부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쳐 부른다고 라헬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매우 담담한 어조로 이런 사실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도 바로 앞에, 하나님은 베델에서 야곱과 말씀을 나누시면서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너의 자손에서 왕들이 나올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에게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으로만 보면 야곱의 길은 탄탄대로이고 슬픔 하나 없을 듯한 느낌인데, 이어지는 장면은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과 아버지 이삭의 죽음입니다.

이런 성서 기술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삶도 죽음을 비껴가지 못합니다.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 한다고 해서 모든 고통과 슬픔, 아픔이 제거되는 것도 아닙니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늘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삶의 이쪽저쪽을 모두 살피는 혜안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소서. 미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며, 불안은 자유의 또 다른 모습임을 알게 하여 주소서. 축복의 약속이 있다해서 언제나 밝은 미래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언제나 겸손함을 유지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담담함을 회복하고, 그냥 존재하는 능력을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