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86. 노예 신앙 잇사갈은 안장 사이에 웅크린, 뼈만 남은 나귀 같을 것이다. 살기에 편한 곳을 보거나, 안락한 땅을 만나면, 어깨를 들이밀어서 짐이나 지고, 압제를 받으며, 섬기는 노예가 될 것이다. (창세 4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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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은 열두 아들에 대한 야곱의 마지막 축복을 다룹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축복 자체라기보다, 열두 지파의 앞날을 내다보며 각 지파의 운명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일종의 예언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잇사갈은 강하지만 자신이 편안히 안주할 땅만을 찾아다니는 게으른 나귀로 묘사됩니다. 천주교 성경이 번역을 잘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카르(잇사갈)는 튼튼한 나귀, 가축 우리 사이에 엎드린다. 쉬기에 좋고 땅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그 곳에서 짐을 지려고 어깨를 구부려 노역을 하게 되었다.” 잇사갈은 자유 대신 편안한 삶을 위해 짐을 지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자발적 노예의 삶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거기 살던 사람들에게 굴복하고, 그들에게 기대어 산 듯 합니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진보해야 하는가를 말하면서,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이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낙타는 권위와 의무에 대한 복종을, 사자는 권위에 도전하는 굳센 의지를, 그리고 어린이는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정신을 일컫습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야곱에 이르는 믿음의 조상들은 늘 미지의 땅으로 떠돌면서 낯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잇사갈은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잇사갈의 길을 뒤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험을 향해 도전하는 좁은 길인데, 잇사갈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 적합하다고 느끼는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며 넓은 길로 갑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서 주체적이면서도 비판적 시각으로 늘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안정적인 제도와 굳어진 교회 권위에 순종하며, 결국은 자본의 논리에 순응합니다. 신앙은 모험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혹시 순종의 이름으로 자유가 억압된다면, 누구에게 순종하고 있는가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움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익숙한 것에 머무르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하여 주소서. 세상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지만 세상과 닮아가지 않게 하시고, 도리어 세상을 변혁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세상의 종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신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