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송실 목사] 진정한 회복을 꿈꾸며 – 2022년 10월 16일 추수갑사주일

에스겔서 37장 1-14절, 시편 104편 1-6절, 히브리서 10장 19-24절

점점 높고 짙은 푸른 빛으로 하늘이 물들어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내리쬐던 뜨거운 햇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스한 온기로 우리에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과 밤에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지만 기분 좋은 청량감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과일나무에는 과일이 풍성히 열리고, 넓은 들에 곡식들은 고개를 숙이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삶의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 해, 열심히 땀 흘려 일한 결과를 만나는 수확의 시간이자, 감사의 계절.

오늘 우리는 창조절이자, 추수감사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신앙인으로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빕니다. 우리에겐 어떠한 신앙의 수확들이 있었는지, 더불어 감사의 계절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삶을 돌아보면서 어떠한 감사의 주제들이 있는지를 떠올리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 삶의 도화지에 색을 입히고 아름다운 그림들로 채워갑니다. 다양한 색과 그림들로 채워진 삶의 도화지를 돌아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며 힘과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새겨진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면서 그 소중한 것들의 색깔과 온도, 받았던 기분까지도 기억하고 느낍니다. 소중한 것들을 담고 우리 안에 새김으로 삶을 살아나갈 때, 더욱 생동감 있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걸어나 갈 수 있습니다. 행복과 아름다운 기억을 가득 안고 말이죠.

그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언제나 아름다운 색들, 그림들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과 절망으로 밀어넣기도 합니다. 물질과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서 그 흐름에 따라 부와 권력, 명예를 좇아 정신없이 뛰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파도의 흐름에 쓸려가는 부유물처럼 나도 모르게 그 흐름에 두둥실 쓸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흐름에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감각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합니다. 일터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휴식과 평온함을 느껴야 하는 가정에서까지도 계속되는 불안은 우울함과 무력함, 무기력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언제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도 모를 만큼 불안과 우울과 같은 감정들은 언제든지 찾아오고, 갑자기 찾아오기도 합니다.

또 연일 미디어와 대중매체를 통해 나오는 소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 소식들이 행복하고 반가운 소식들로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반갑고 기쁜 소식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오는 소식들이 대부분이며 자극적이고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물론 미디어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소식들이 주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무분별하게 넘치며 쏟아져 오는 소식들은 피로와 동시에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을 무뎌지게까지 합니다.

내·외부적으로 다가오는 불안과 걱정, 우울감 등 부정적 요소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사진이나 그림에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지듯, 우리의 삶의 도화지도 부정적인 감정과 감각들로 하나, 둘씩 쌓여감에 따라 조금씩 변해갑니다. 풍성한 색깔과 그림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삶의 도화지가 조금씩 퇴색되어 갑니다. 우리의 삶의 도화지가 잿빛으로 변해버리고, 누렇게 떠버려서 조금이라도 손대면 언제라도 바스러질지 모를 위태위태한 그림과 사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든지 한쪽으로만 치우쳐 버리면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하거나 놓치게 됩니다.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 정신없이 살다보니, 우리는 정작 우리가 가져야 하는 감각들, 소중한 기억들, 우리의 영혼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해야하는 것들은 소홀히 하지는 않았을까요? 너무 소홀히 해서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진 않았을까요? 에스겔의 환상 속에 나온 너무 말라버린 마른 뼈들처럼 말입니다.

에스겔서는 바빌로니아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침략과 이스라엘 파괴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에스겔서의 이 본문을 읽을 때 무서워했습니다. 쉽게 상상을 하기 때문이었는데요. 어린 시절 느꼈던 이 본문의 이미지는 이랬습니다. 구름 가득 끼어 한 줄기의 빛도 내리지 않는 넓은 들판, 먼지만 가득하고 시들어 말라버린 나무와 대지, 잿빛으로 물들어 있는 하늘, 그리고 그 위에 여기저기 가득 쌓여 있는 해골과 뼈들. 한기를 품고 불어오는 바람. 그곳에 홀로 서 있는 사람. 에스겔.

생명의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만약 내가 서 있다면? 저 장소에 서 있을 모습을 그려보고 싫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우울하고 어둡고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절망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상상하였기에 이 본문이 싫었습니다. 끝까지 제대로 안 읽었었다는 뜻이겠죠?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모습, 상태는 아마도 제가 상상했던 이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민족의 멸망,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이 그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도화지는 좌절과 절망으로 잿빛에 곧 바스러지기 직전의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절망과 희망이 없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음침한 기운과 잿빛으로 가득한 골짜기,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골짜기에 서 있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말라버린, 뼈들 절망과 절규에 가득 차 나뒹굴고 있는 뼈들을 보시면서, 이 뼈들이 다시 살아 날 수 있겠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주님께서 아십니다. 에스겔의 대답입니다. 이 대답에는 주님께서만 가능하신 일입니다.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더불어 생과 사는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피조물로서의 고백도 함께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담긴 대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자. 뼈들이 움직여 자기의 짝을 찾고, 그 위로 살갗이 덮이며 생명력이라곤 하나도 없던 마른 뼈들에 소생과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생기에게 명하게 하여 소생한 이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니, 진정한 의미의 소생과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에스겔서의 이 본문을 보실 때, 여러분이 에스겔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의 모습을 상상해보시라는 것입니다. 잿빛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골짜기가 빛과 생명이 넘치는 곳으로 변하고, 음산한 기운을 주던 공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공간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 날 비가 가득 내려 구름 낀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리는 모습만 봐도 우리는 큰 감동과 영감을 얻습니다. 환상을 통해 차갑고 죽음과 절망만이 가득한 골짜기가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간접적이긴 하나 상상함으로써 회복과 소생의 기쁨을 함께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 의지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멸망 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복과 소생의 환상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에스겔 예언자를 통해서 그들에게 약속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함께하시고 그들을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약속의 메시지를 말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기도 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또 등을 돌리고 실망시킬지라도 결국, 다시 회복시켜주시고 함께 해주신다고 약속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치고 힘들어서 넘어질 때도, 불안과 절망에 휩싸여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불안을 넘어 고통과 절망에 휩싸일 때는, 주님을 잊을 때도 외면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디에 계시느냐 울부짖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절망에 휩싸인 이스라엘을 회복, 소생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약속해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약속 위에 함께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소리를 외침을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생의 도화지가 잿빛으로 물들고 곧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해 보일 때에 반드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채우는 아름다운 색들이 다시 빛날 수 있도록 더욱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질 수 있도록 약속해주십니다. 회복을 통한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 어쩌면 창조의 모습으로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서 우리의 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본연의 내 모습을 깨닫고 더욱 사랑하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구약의 기록들과 전승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성취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사랑의 사건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오늘 함께 나누신 본문인 히브리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일들을 다루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권면의 내용은 바로 믿음, 소망, 사랑 이 3가지 주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과거 율법으로 제사장이 동물의 피를 통해 죄 씻음 행위를 해야했고, 실질적으로 동물이 피가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없기에, 반복적으로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마음의 죄책감에서 우리가 해방되었고, 몸의 깨끗함 또한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참된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났으니,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권면하고 있는 것은 “흔들리지 말고, 고백하는 소망을 굳게 지키자.”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약속이나 소망에 대한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문맥상으로 의미를 보면 초대 공동체 속에는 그들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의 내용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들이 이 신앙고백을 지키고 실천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이 약속을 하신 이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키시고 큰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에 그를 믿는 우리도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적 신앙차원의 방향에서 더 확장하여 공동체적 가치를 가지고 공동체를 향한 차원으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초기 공동체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내적, 외적인 위협과 방해들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들 상황 속에서 함께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뜻을 따르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더욱 서로 사랑하기에 힘쓰길 저자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윤리의 핵심이 바로 사랑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종교적으로나 정신적, 사회적 가치를 함께 나누고 사랑과 선행을 베푸는 행위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미덕을 배우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는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건강하게 잘 이겨나가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권면을 통해서 공동체의 믿음과 소망에 대한 신앙고백을 확고히 하고 세상 속에서의 공동체가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나아가길 바랬습니다. 더 나아가, 사랑과 선행을 통해 교회 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손길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까지 손내밀며 도와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로서 나아가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요소 중에 “회복”이 있습니다. 정말 단순히 피로회복부터 지구의 회복같이 아주 큰 개념으로서의 회복도 있습니다. 회복, 치유, 힐링과 같은 단어들이 현대인의 관심사가 되고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픔과 상처를 입은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정신적, 정서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늘어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의 과정 속에서 고통받고 회복되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종교는 삶의 과정 중에 겪는 고통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오늘 에스겔서에서 보여준 것처럼 마른 뼈를 회복시키듯 우리도 회복시켜주시리라는 믿음과 약속의 신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대속의 큰 사건은 신앙의 이름 아래서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줍니다. 우리에게 오는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약속과 신뢰를 통한 회복을 이루어 하나의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회복하고 성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인의 성장과 회복에만 만족한다면 우리는 과연 성숙한 그리스도인일까요? 내 이웃과 주변의 고통에 반응하지 못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가 고통받고 무너져 내리는걸 보면서 개인의 성장과 회복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회복과 성장을 넘어서 함께 고통받는 이들과 회복하고 성장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되어 아름다운 색과 생기 넘치는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도웁시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한 믿음과 소망 아래서, 연대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며, 속한 공동체를 넘어 아픔이 있는 곳에 손을 내밀고 사랑을 나누는, 진정한 회복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 건강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편의 시인은 창조세계 속을 거닐며 주님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 창조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심 느끼며, 경험한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창조세계를 바라보면서 모든 것의 근원과 이유가 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진정한 가치는 창조의 모습으로 회복되길 꿈꾸며,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시편 저자의 노래가 궁극적인 회복을 꿈꾸며 나아가는 우리의 노래가 되길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