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육성한 목사]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2022년 8월 14일

출애굽기 31장 12-17절 시편 51편 6-12절 갈라디아서 5장 11-15절

[폭우 속에서 보낸 한 주를 돌아보며]

하늘이 찢어진 듯 쏟아지는 비에 마음 졸이며 한 주를 보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얼마 전까지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더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록적인 폭우는 많은 이들의 삶에 큰 상처를 냈습니다. 이번 폭우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삶의 터전이 훼손당한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움의 손길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폭우를 겪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다시 한번 봅니다. 먼저는 이 폭염과 폭우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 기후 재난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이 불평등하게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이번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발달 장애인 가족과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청소 노동자들은 재난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물을 퍼내고 잔해를 치우느라 온몸이 파스로 도배가 됩니다. 가슴 아픈 재난의 현장에서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정치인들의 실언을 듣고 있을 때면, 정말 화가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평등한 세상을 위해 더 일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평화통일주일]

오늘 우리는 또 한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입니다. 오늘은 기장 총회가 제정한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한반도 분단과 그 아픔을 기억하고,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 이후로 우리가 지키는 평화통일 주일에는 세계 교회가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지금 이 시간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와 통일 기대하고 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는 평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 5:9)라고 말씀하셨듯이 평화를 위하는 삶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입니다.

평화를 이루어야 할 그리스도인, 특별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단은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높은 담 중 하나입니다. 분단이라는 현실은 우리 일상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평화를 깨뜨립니다. 언뜻 보면 큰 전쟁 없이 70년이 넘는 긴 세월을 보내면서 지금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평화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은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실재적 폭력입니다.

분단체제는 둘로 나뉘고, 서로에게 적대적인 마음을 가지는 이분법적인 체제입니다. 분단체제 안에서는 군사와 안보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의제입니다. 평화를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평화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힘과 폭력인 것입니다. 분단체제에서는 환대와 우정보다는 적대와 혐오가 정당해집니다. 나와 다른 낯선 타자는 손님이 아니라 적으로 쉽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이분법적인 구분들과 그 사이의 갈등은 결코 분단이라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남성과 여성,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갑과 을, 서울과 지방, 강북과 강남, 선배와 후배, 진보와 보수 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적대와 갈등이 결코 분단이라는 상황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단은 우리의 사고를 축소하고, 단순하게 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게 합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와 다른 존재를 향해 날을 세웁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분열과 갈등은 대부분 이런 문제입니다. 분단, 둘로 나뉜 체제 안에서는 다른 누군가를 수용하는 일도, 화해도, 이웃이 되는 일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우리 일상의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는 일은 전쟁을 끝내고,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원하는가?]

그러나 분단을 극복하는 일은 멀게 느껴지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닙니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스며든 비평화적인 가치들입니다. 우리는 폭력과 갈등을 더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평화를 말하지만, 여전히 폭력을 즐깁니다. 영화관에는 언제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인기를 얻고, 전쟁의 현실감을 잘 표현할수록 그 영화는 높이 평가되고 성공합니다. 우리는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위대한 전쟁의 역사는 기억하려고 합니다. 승리한 전쟁을 추앙하고, 우리 선조가 이룬 업적이라며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평화를 위해 걸어 온 역사보다, 전쟁의 역사, 승리의 역사, 힘의 역사에 더 관심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평화를 가로막는 더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큰 힘을 바탕으로 승리를 갈망하는 우리의 욕망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9년 7월, 엘림넷 나우앤서베이에서 7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69.7%가 ‘통일을 원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한 조사에서도 과반수 이상이 통일을 원한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통일을 원하는 이유를 물으니 1위가 ‘경제부흥의 계기’(49.7%)였습니다. 그런데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도 그 이유를 물으니 1위가 ‘경제적 부담이 클 것 같아서’(53.8%)라고 합니다. 통일을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가장 큰 문제는 ‘돈’인 것입니다. 사실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평화를 꿈꾸기보다 이익을 원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말하고, 통일 말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존재로 변하지 않는다면 분단의 해결과 평화는 먼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되는 과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에 모든 영역에서 폭력적인 부분을 없애 나가고, 큰 힘과 물질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철저하게 거둬낼 때,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시며 평화를 이루어 가십니다.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표현한 이사야서 11장은 사자가 풀을 뜯으며, 자신의 본성을 내려놓는 모습을 그립니다. 또 미가서에서는 생명을 해치는 칼과 창이 생명을 일구고 살리는 농기구로 변화하는 것이 평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폭력을 단념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로 변할 때,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

우리가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평화를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해줍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할례를 받을 것을 강요하는 이들을 격양된 어조로 비판합니다. 유대인 출신인 바울이 할례받는 것에 아주 부정적입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도 할례를 받아서 유대인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들의 입장이 유대인이라는 우월의식과 선민의식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참 자유를 경험한 공동체 안에서는 그 어떤 계급 질서, 주인과 종의 관계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기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이방 사람에게 할례받을 것을 강요하면서 유대인의 신분으로 누군가를 지배하려고 하자 바울은 참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바울은 충격적인 말씀을 합니다. 우리가 읽은 새번역 성경에는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라고 되어 있지만, 이 부분은 개역개정 성서의 번역이 오히려 더 정확합니다. “사랑으로 종 노릇을 하라.”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인들에게 노예가 되라고 한 것입니다. 노예는 당시 가장 수치스러운 신분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듯, 당시 사회에서는 명예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명예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이들에게 바울은 수치의 상징이 되는 노예가 되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전합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철저하게 지배의식이나 폭력성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우리 내면의 지배 욕구를 철저하게 버리고, 폭력을 단념하고, 오로지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된 이들의 삶의 방식은 사랑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육체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에게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평화란 쉽게 말하면 갈라진 사이를 채우고, 서로 막고 있는 담을 허무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내면의 폭력을 단념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평화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가 될 때, 내 안의 폭력성과 관계를 갈라놓는 모든 것을 없애려고 노력할 때, 평화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는 존재입니다.

[폭력을 조장하는 세상에 저항하라]

사랑하는 존재가 되고, 평화를 이루는 존재가 되려면 폭력적이고 이웃과의 관계를 갈라놓는 지금 세상의 가치 질서를 알아차리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의 말씀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명령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표징이라고 하십니다. 쉬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식일, 그리고 쉼을 지키는 것이 파라오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왕 파라오는 히브리 백성에게 쉼을 박탈하고 노동을 강요한 존재입니다. 최근 고고학자들은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노예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고, 보상을 해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파라오는 철저하게 히브리 백성을 더 많은 노동, 고된 노동으로 괴롭히던 왕이라고 서술합니다. 파라오는 끊임없이 생산을 요구합니다. 끝없는 생산을 요구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이 노동하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시스템 속에 갇혀 신음하는 히브리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안식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쉼을 주신 이유가 단순히 고된 노동을 줄여주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들이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의 핵심은 ‘관계’였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쉬지 못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경쟁자이고 적이고 원수가 됩니다. 쉼 없는 노동은 관계를 파괴하고 평화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고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은 관계를 단절하고, 서로를 폭력적으로 대하게 만드는 세상의 질서, 그 시스템에 철저하게 저항하라는 명령입니다.

“요즘 바쁘시죠?” 우리가 정말 많이 하는 안부 인사입니다. 제가 요즘 많이 듣는 안부이기도 합니다. 바쁘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정값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쁜게 좋은거죠.”라는 말처럼 우리는 바쁜 것을 긍정하며 살아갑니다. 바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하고, 바쁘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기도 합니다. 더 일하지 않으면, 더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끝없는 경쟁 속에 자신을 밀어 넣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무한 경쟁이라는 우리 사회의 질서는 애굽의 질서와 매우 닮아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내 곁의 이웃을 보지 못하고, 올바른 관계 맺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평화를 상실합니다.

“이렛날은 나 주에게 바친 거룩한 날이므로, 완전히 쉬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쉬지 못하게 하는 세상 질서에 저항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회복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쉼을 통해 내 곁의 존재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하고,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라고 강요합니다. 지배하라고 말합니다. 올라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온전히 안식하길 요구하십니다. 우리를 폭력적으로 만들어 가는 세상의 질서를 끊어내고, 이웃과의 단절, 적대감을 없애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룩한 주일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안식일과 주일예배는 엄밀히 구분하면 다른 개념이지만, 우리는 주일에 주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거룩한 안식일의 의미를 함께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을 불안, 두려움, 시기, 질투, 분열, 다툼을 우리 안에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든 질서와 단절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의 존재가 주님을 통해서 새롭게 되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품을 얻는 그런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모든 죄악을 없애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자신의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우리도 오늘 이 시간 주님께 우리 안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세상의 그릇된 질서로 형성된 우리 안의 모든 죄악을 씻어달라고 간구합시다. 우리 안에 모든 폭력성을 비워낼 수 있을 때, 우리 마음이 깨끗하게 창조될 때, 그렇게 우리가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 평화는 시작됩니다.

[평화적 존재로 살아가기]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평화는 거대한 사회 구조의 변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의 변화로부터 찾아옵니다. 평화의 사도로 부름받은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날이 서게 만들고, 갈라지게 만드는 세상의 모든 폭력적인 질서에 저항해야 합니다. 더 많이 가지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이자 유일한 가치인 사랑만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존재가 변할 때 우리 삶에, 이 땅에 평화는 분명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평화 나누기’라는 시로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일상에서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 / 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 / 현실에 발을 굳게 딛고 마음의 평화를 키우는 것

경쟁하지 말고 각자 다른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 일을 더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 좀 더 친절하고 잘 나누며 인간의 예의를 지키는 것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 삶을 위한 반대를 하는 것 / 비록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게 하는 것 / 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면서 / 따뜻이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가는 것

우리 함께 저항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며, 사랑하며 평화적 존재로 한 걸음 한 걸을 살아가게 되길 이 시간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주님, 저희를 당신의 평화로 인도하소서.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든 모든 죄악을 깨끗게 하시고, 당신의 사랑만을 품게 하소서. 평화를 가로막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이 땅에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생명의 주님, 우리에게 생명과 삶을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 사랑으로 돌보시니 우리의 생명이 충만하며 온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생명과 삶은 소유하기보다 나눌 때 자라납니다. 그리고 풍성해집니다. 희생해도 잃지 않고, 오히려 사랑이 자라납니다. 경이로운 생명과 삶으로 저희를 초대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우리 삶에 주신 선물들에 감사하며 작은 정성을 모읍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나눌 때, 주님께 드릴 때, 우리 삶에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여러분을 날 서게 만들고 이웃과 갈라지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저항하십시오. 오직 사랑만을 품고 행하십시오. 평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자 애쓰는 생명사랑 교우들과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