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중 목사] 하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들 – 2026년 09월 27일
욥기 37장 14-24절, 로마서 9장 14-26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추석 명절이 평등하고, 안전하며, 쉼이 있었던 연휴가 되셨을까요? 언제 어디에서나 나와 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평안을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친구들에게 묻겠습니다. 이 세상을 누가 창조하셨나요? 누가 만드셨나요? 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드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하늘은 왜 만드셨을까요? 땅은 또 왜 만드셨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왜 하늘을 만드시고, 땅을 만드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늘과 땅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우리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읽은 두 본문을 통해 방금 나눈 이야기의 의미를 더 깊이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알 수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과 결과,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원인과 결과를 다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겸손한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한다고 오늘 두 본문은 이야기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로마서 본문의 첫 구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4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라는 질문을 바울은 던지고 있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오늘 읽은 본문의 앞 구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혈통이나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11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 있게 하시려고, 12 또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셨습니다. 13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않았음에도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야곱을 구원 계획의 일부로 택하셨다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불공평합니다. 에서가 아직 뭘 하지도 않았는데, 불의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구원 계획에서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에서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보통 어떻게 생각합니까?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라고 생각하고, 인과응보 또는 능력주의에 따라서 선택이 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아직 아무 행위의 결과가 없는데도 누군가를 선택하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불공평하다는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14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런 선택들에 관한,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는 주장에 대해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런 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곤 출애굽기 33장 19절을 인용해 하나님이 이런 선택과 결단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나님 주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 하셨습니다. 16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구원과 은혜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없는 무 조건적인 선물’이라는 점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원함이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불구하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세상은 조건과 자격을 갖춘 자를 선택하고, 갖추지 못한 자는 실패한 자라 여기며 배제시키고, 도태시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격 없는 자를 선택하여 은혜를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행위 없이 주어지는 은혜는 불공평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 ‘자비로운 불공평함’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무능력함과 믿음의 실패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하기 위해 17절과 18절에서 이집트의 왕이었던 ‘바로(파라오)’의 이야기로 이해를 돕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그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의 적이었던 바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바로를 세우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원하시는 사람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신다.”라고 선언합니다.
사실 오늘 예배를 함께 드리는 교회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인 우리 역시도 이런 하나님의 선택과 일하심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바로를 세워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실 수 있지?, 아니 왜 사람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셔? 아니 왜 누구는 불쌍히 여기시고, 누구는 불쌍히 여기시지 않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택과 과정에 대해 우리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과 자비를 통해 모든 이들의 구원을 이루어가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재미있는 비유 하나를 들려줍니다. 바로, ‘토기장이의 비유’입니다. 우리 친구들 찰흙이나 클레이 가지고 놀아본 적 있나요? 친구들은 클레이로 무엇을 만들어 보았나요?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어 보았을 거에요.
(클레이로 만들기)
그런데 친구들이 클레이로 무언가를 만들 때, 친구들에게 클레이가 “나를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라거나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요구하거나 따질 수 있나요? 없지요. 클레이를 어떤 모양으로, 어떤 쓰임새로 만들지는 전적으로 클레이를 만지는 우리 친구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시는 ‘토기장이’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손에 쥐어진 ‘진흙’입니다.
하나님은 쓸모에 따라 그릇을 만드시지만, 우리는 그 그릇에 가치를 매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불공평하다고 말하고,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내 가치와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길 안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세상은 가치를 매겨서 값이 나가고 화려한 그릇만 쓸모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자격 없고 깨진 것 같은 그릇 안에 오히려 넘치는 자비와 은혜를 담아 주십니다.
우리는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내 머리로 다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내 기준에 맞게 설명이 되어야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또 다른 본문인 욥기 37장에서, 엘리후라는 인물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묻고 있는 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욥 어르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들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엘리후는 욥과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다 아십니까?”, “당신이 정말 다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어린이 친구들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먹구름이 하늘에 어떻게 둥둥 떠 있는지, 번개가 구름 속에서 어떻게 번쩍이는지, 남풍이 불 때 왜 날씨가 더워지고 땅이 고요해지는지 그 이유를 우리가 다 알 수 있나요?
엘리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자연의 섭리조차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 계획과 깊은 의도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23 하나님의 권능이 가장 크시니, 우리가 전능하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을 대하실 때에, 의롭게 대하시고, 정의롭게 대하여 주십니다. 24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을 무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을 무시하십니다.’ 엘리후의 이 고백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 지식’과 ‘내 기준’과 ‘내 경험’과 ‘나의 공평함’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행동은, 그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머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학교 친구들. 우리가 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들’은 저 멀리 하늘의 구름이나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이 사실은 가장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겪는 마주하는 상황은 마치 커다란 퍼즐의 한 조각과 같습니다. 우리는 내 손에 들린 퍼즐 한 조각만 보고 “왜 내 조각은 예쁜 색깔이 아니지? 왜 나에게는 이렇게 속상하고 힘든 일이 생기지?”라고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전체 퍼즐의 완성된 멋진 그림을 다 보고 계십니다. 내가 가진 마음에 들지 않는 퍼즐의 한 조각이, 사실은 멋지게 완성된 퍼즐의 한 부분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조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기한 일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다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를 빚으시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분명하게도 나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신기한 일하심을 굳게 신뢰하며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할 믿음의 삶과 발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