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정찬용 목사] 강산이 변하는 동안에 – 2022년 7월 3일

이사야 66장 10-14절, 갈라디아서 5장 1-10절, 누가복음서 10장 16-20절

[ 성령 임재의 기도 ]

주 하나님! 이 시간 저희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 지혜를 더하셔서, 뿌려지는 씨앗들이 저희들 옥토같은 마음에 심기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곳에 모인 이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축복과 인사 ]

오늘 이 시간 함께 말씀을 나누시는 생명사랑교회 모든 성도들께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더하시기를 소망합니다.

[ 저를 소개합니다. 만나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

저를 이미 많은 분들이 너무 잘 알고 계시고, 유튜브에도 이미 제 소개가 담긴 영상도 올라간 것으로 알지만, 제가 워낙 오랜만에 생명사랑교회에 방문하다보니 새로 뵙는 분들이 많아 먼저 제 소개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2013년 3월에 어린이부 교육전도사의 직분으로 생명사랑교회와 연을 맺기 시작한 정찬용 이라고 합니다. 이후 2016년 말까지 만 4년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어린이부, 청소년부를 오가며, 또 한문덕 목사님께서 초대 담임목사로 청빙되시기 전에는 행정업무와 수요기도회 등을 담당했었습니다.

2015년 11월 22일, 딱 제 생일이라 더욱이 잊을 수 없는 그날, 한 목사님께서 부임하신 뒤로는 1년 간 한 목사님을 보좌하며 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2017년에 군목으로 입대하여 연천과 양주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엊그제 목요일을 기해서 5년 군복무에 종지부를 찍고 민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생명교회’ 때부터 이어져온 이 공동체를 한평생 지키신 성도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생명사랑교회만 따져보면 저도 아직 원년멤버 대우(?)를 받는 것 같습니다. 전역하고 첫 주일예배에 저로서는 친정같은 이 교회에 설교자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기쁘고 모두의 얼굴이 반갑습니다.

[ 왜 나를 설교자로?? ->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

약 두달 전, 생명사랑교회가 ‘육성하신’ 육성한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이날 설교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 첫 반응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육 목사님하고는 신학교 동기이자 친구라 편하게 통화했습니다) “나? 나한테 설교를 부탁한다고? 왜? 아니 세상에 뛰어난 설교가가 얼마나 많이 계신데 굳이 나를 왜..?” 그러자 육 목사님이 간단하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 찬용아. 성도님들이 널 정말 많이 보고 싶어하셔.”

이 말을 듣는데 제 속에 부담감이 싹 내려갔습니다. 저한테 어떤 신령한 하늘의 말씀을 듣고자 함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아마 세상에 제가 얼굴 하나로 이미 먹고 들어가는 곳은 생명사랑교회 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대체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까?’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축구 이야기랑 군대 이야기라는데, 저는 지금도 ‘최근에 가장 인상깊은 사건’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군대에서 축구한 것, 엊그제 수요일 전역신고 전날 폭우 속에서 간부들이랑 연병장에서 축구한 게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준비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여러 상황과 또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인도하셔서 저로 하여금 이곳에 서게 하신 것에는 또 나름의 뜻이 있으리라 믿으며 기도했습니다. 왜 이 때, 왜 나라는 사람을 이 자리에 서게 하셨을까?

저는 결코 생명사랑교회의 현직 교역자들에 비해 학문적 소양이 뛰어나지도 않고, 교회가 초대할 수 있는 다른 외부 강사들에 비해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생명사랑교회의 영유아 시절을 함께 한 사람이고, 그래서 어쩌면 곧 열번째 생일 – 사람으로 치면 초기 청소년기 같은 폭발적 성장기 – 을 앞둔 생명사랑교회의 상황에 필요한, 그러니까 지금 우리 교회와 겉돌지 않는 말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모쪼록, 저를 통하여 나누어질 말씀이, 우리의 삶과 영혼에, 그리고 10주년을 앞둔 우리 생명사랑교회에 유익한 영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저는 공동성서정과에서 제시된 본문을 가져왔습니다. 주어진 3개의 본문을 통하여, 강산도 변한다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교회가 잘 해온 것 2가지, 그리고 우리 교회가 다시 상기해야 하는 1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 생명사랑교회 – 조건없는 사랑의 요람 ]

첫 번째, 생명사랑교회는 ‘조건없는 사랑’의 요람 이어야 합니다.

‘조건없는 사랑’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존 보울비 라는 심리학자가 떠오릅니다. 보울비는 인간은 영아 시절 부모와 같은 주양육자로부터 조건없는 사랑을 받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인데요. 그에 따르면 조건 없는 사랑이야말로 어린 아기로 하여금 부모에 대한 유대와 신뢰를 형성하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신뢰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를 ‘안정 유착’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불안정 애착 상태’가 되는데요. 이렇게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공격적이거나 회피적이거나 거부적인 형태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건없는 사랑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 가치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은혜 또는 은총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을 행위나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그 자신 안에서 찾은 이유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어 그분의 조건없는 사랑을 누리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이 조건없는 사랑에 관해선 처음부터 아주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교회를 거쳐간 교역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요즘처럼 교회와 목사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고, 현실의 벽이 높을 때에는, 제아무리 신학생이라 하더라도 목회자가 되는 것에 회의가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교역자로 섬기던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들어서 교회 자체를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사실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거쳐간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생명사랑교회를 거친 교역자들은 새로이 교회를 꿈꾸고 목회자로 살기를 다시 다짐했습니다. 저 역시 2013년도에 생명사랑교회에 올 때만 하더라도 제가 목사가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저를 환대해주시는 것처럼,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분들, 나보다 나를 더 아름답게 기억해주는 분들, 조건이 다 차지 않아도 베풀어주는 사랑의 교제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고, 생명사랑교회가 배출한 1호 목사가 되었고 여기 이렇게 서 있습니다. 생명사랑교회는 저에겐 조건없는 사랑을 알게 해준 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조건없는 사랑은 교역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신앙인으로서, 아니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토록 깊이 사랑받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보울비의 주장하듯이 이것은 어린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나 노인에게도 필요합니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소설가 박완서 씨가 80세 되던 때,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수필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나이에, 머지않아 증손자 볼 나이에도 지치거나 상처받아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이불 속에서 몸을 태아처럼 작고 불쌍하게 오그리고 엄마, 엄마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서럽고도 서럽게 엄마를 찾아 훌쩍인다면 누가 믿을까. (중략)

엄마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내 시름에 겨워 엄마, 엄마를 연거푸 부르면 끝도 없이 옛날 생각이 나고 이야기가 이야기를 부르면서 마음이 훈훈하게 젖어오면 오그렸던 몸이 펴진다. 이 몸이 얼마나 사랑받은 몸인데. 넘치게 사랑받은 기억은 아직도 나에겐 젖줄이다.” (박완서,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조건없는 사랑 – 이사야 66장의 본문 ]

이 조건없는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관계가 이사야서 본문에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본문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며 슬퍼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어머니로, 당신의 백성을 젖 무는 아주 어린 아가처럼 말씀하십니다. 이 본문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가슴이 울렁일 만큼 너무나 애틋함이 느껴집니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하는 아기 앞에 엄마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주는 존재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지난 10년 간 잘 해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이 교회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조건없는 사랑,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알려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사랑을 먼저 누린 이들이 가득한 사랑의 요람이 되고,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 어린 아이에게나 노년에 계신 분에게나 이 공동체를 찾는 모든이에게, 이 공동체를 통하여 조건 없는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생명사랑교회 – 함께 짐을 지는 교회 ]

두 번째는, 생명사랑교회는 함께 짐을 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사랑교회에서 지낼 땐 총각이었던 제게, 지금은 28개월 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아직 부모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를 보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부모는 자녀에게 무한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모든 것은 부모의 영향으로 여겨집니다. 뱃속에서 엄마의 배를 걷어차면 아빠가 축구를 해서라는 둥, 전혀 알아보기 어려운 초음파 사진 가지고도 엄마를 닮아 코가 높다느니 하는 둥 말입니다. 이런 책임감은 아이가 태어나면 더욱 구체적으로 변해갑니다, 아이의 생김새 하나하나, 자라는 동안 보여지는 행동 하나하나까지 이쁜 모습을 보면 다행스럽지만 못난 모습을 보면 부모는 다 제 탓처럼 느낍니다. 부모는 심지어 자녀가 부모의 잘못과 상관없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당하더라도 그조차도 내 탓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차라리 너를 낳지 말걸’ 하는 한 엄마의 절규가 생각납니다)

[ 함께 짐을 지는 교회 – 갈라디아서 본문 ]

오늘 갈라디아서 본문은 서로 짐을 지는 공동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짐을 진다(burden)는 것은 책임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다른 지체들의 즐거움과 아픔, 기쁨과 슬픔 모두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통점이 더욱 넓어져야 합니다. 최근 개인의 권리가 신장된 사회에서, 특히 거리두기가 미덕이 된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우리 사회에서는 고통의 문제도 서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2020년에 비해 2021년은 우리 사회의 자살사망자가 두배 가량 증가했다는 걸 아십니까? 이번에 완도 앞바다에서 숨진 일가족이 한달이 넘도록 발견되지 못한 문제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노인 고독사가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교회는 무례하지 않게, 공손하게,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고 짐을 나누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주신 새 계명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13:34) – 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생명사랑교회가 아주 잘 해오셨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 간 교제와, 교단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해온 활동들을 보아도 칭찬받을 만 합니다.

[ 끝을 기억하는 교회 – 누가복음 본문 ]

마지막으로 드리고자 하는 권면은, 언제나 끝을 기억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칠십 명의 사람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가 돌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왜 홀로 보내지 않으시고 둘씩 보내셨을까?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로 짐을 지고, 서로 공감하고, 서로 돌보아주게끔 하는 관계를 원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이 본문을 통해 주목하기 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으로부터 보냄받은 자들을 다시 모아 ‘결산’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듯, 달란트를 맡긴 임금이 돌아와서 그랬듯, 우리 주님도 우리 각자와 공동체를 두고 결산하실 때가 이를 겁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처럼 모든 인생이나 공동체에는 ‘끝’(마지막)이라는 게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2020년 가을, 코로나의 공포로 예배가 멈추고 교회는 숨도 쉬지 못할 때, 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했던 이재철 목사님이 책을 한권 냈습니다. ‘목사, 그리고 목사직’ 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는 목사가 목사들에게 던지는 7가지의 도전적인 질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중 맨 마지막 질문이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있는가?’ 이 질문은, 하루 매 순간을 정말 절박한 심경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목회에 임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단지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나 끝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 끝을 망각한 인생과 공동체는 방향을 잃고 본질에서 벗어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 처음 생명사랑교회 – 언제나 마지막 같았던 ]

처음 생명사랑교회에 왔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두산아파트 상가 지하에 막 입주했던 그 시절입니다. 저는 교회가 어딘지 몇번이나 설명을 들었지만, 그날 꽤 헤맸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상가, 그것도 외부에 가려진 계단, 그 위에 달린 간판에는 ‘생명사랑교회’ 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교단도 없고, 교회 마크도 없었습니다. 예배당은 볕 한줌 들지 않았고, 습한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애초에 교회에 갈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던 기간에 주변으로부터 걱정어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에는 ‘분열’, ‘상처’, ‘불신’ 등의 단어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첫날 제 눈으로 확인한 교회 현장도 주변의 걱정이 정말 사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날 성도님들은 저를 환영해주시긴 했지만, 저는 그날 악수를 하고 눈을 마주쳤던 성도님들에게서 미처 다 감추지 못한 어떤 슬픔,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인사하고 있는 이 분이 당장 다음주부터는 안 나올 수도 있어.’ 와 같은 마음들이 조마조마하게 들어 있었던 겁니다.

그것은,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분열의 아픔을 직접 겪은 이들이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10년 전 생명사랑교회는 이 상처 위에 딱지 하나 돋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새 살이 아주 자리를 잘 잡은 모양이 되었지만, 저는 한편으론 그 상처가 주는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 우리는 오늘 마주한 이 시간이 서로에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그 절박함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강하게 묶이도록 해주었습니다. 끝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사랑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 어떤 결심 ]

이해인 수녀님은 2008년도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분의 병세와 의료기술로 볼 때, 생존율은 약 30%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도 이해인 수녀님은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투병생활 중에 쓴 시가 하나 있는데요. 소개해드리면서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어떤 결심, 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고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 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 왔다

마지막을 사는 사람, 끝을 기억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 권면 ]

사랑하는 생명사랑교회 교우 여러분!

혹여 우리의 삶이, 원치 않는 일이 겹겹이 닥치고 너무나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면,

미운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고,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 찾아온다면 꼭 하루씩만 사십시오.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고,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원치 않는 난관에 부딪혀 앞이 보이지 않거든,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거든,

또는 오늘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시거든,

꼭 한 순간씩만 사십시오.

우리의 삶, 이 아름다운 공동체 모두 우리 주님의 은총으로 빚어진 선물입니다.

지난 10년. 강산이 변하는 동안에, 우리 안에서도 선한 변화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10년. 세상이 뒤집힌 동안에, 우리 안에 사랑으로 하나되는, 한결같은 올곧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의 10년, 앞으로의 10년, 우리 교회가 걸어갈 모든 여정에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합니다.

[ 설교 후 기도 ]

존귀하신 주님!

부족한 대로, 연약한 대로 당신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희에게 먹이신 것, 소화되게 하시고 저희 각 사람의 삶과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나아가는 모든 길을

주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보냄의 말 >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조건없는 사랑으로 하나되어, 서로 짐을 나누어 지고, 오늘 하루씩 꼭 한순간씩 사십시오.

우리의 삶이 더욱 아름다워지며, 우리 교회는 날마다 부흥할 것입니다.

< 축도 >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고,

여러분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여러분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여러분을 고이 보시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주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