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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설교자-이영미 목사] 하나님께 드릴 나의 국민 청원 – 2022년 5월 22일

스바냐 3:14–20; 시편 119:65–72; 누가복음 23:18–31

생명사랑교회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한 주 동안 성서 정과 본문으로 스바냐 3장과 누가복음 22-23장을 단위별로 나눠서 읽으셨을 텐데, 오늘의 본문은 수요일에 해당하는 성서 정과 본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스바냐 3:14-20과 누가 23:18-31을 세밀하게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 본문입니다.

“스바냐”란 “야(웨)가 보호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1장 1절은 스바냐가 구시(Cushi)의 아들로 남왕국 유다의 왕 요시야(기원전 640-609)때 활동한 예언자였다고 소개합니다. 그는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4대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소개되는 특징이 있는 데, 학자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이는 스바냐가 구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의하면 이방인은 야웨의 예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스바냐가 왕족 출신 예언자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족보에 따르면,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기원전 715-687)의 현손(玄孫)이 되는 데, 종교개혁을 단행한 히스기야 왕과 예언자 스바냐의 연관성을 강조한 것은 스바냐의 예언이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강조하려는 목적이 깔려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를 기점으로 손주, 요시야왕은 할아버지의 개혁을 계승하여 다시 시도하였고(왕하 23:4-15), 현손인 스바냐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철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스바냐에는 요시야의 개혁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바냐의 예언은 앗시리아 제국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기 전, 그리고 요시야 개혁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스바냐의 예언이 요시야 개혁 이전에 이루어져 젊은 유다 왕 요시야가 개혁 계획을 발전시키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남왕국에서 개혁이 불가피한 시기에 예언한 스바냐가 오늘의 본문(3:14-20)에서와 같이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구원의 노래(3:14-20)를 기쁨으로 부르도록 요청하는 것은 요시야의 개혁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스바냐서는 세 개의 단락- 야웨의 날, 심판선고, 심판과 구원에 대한 희망, 기쁨의 노래-으로 구분되는 곳인데, 이 구조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체 본문이 두 명(야웨와 예언자) 대화로 이루어지는 점입니다.

스바냐는 전반부에서 “야웨의 날(욤 야웨)”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우주적 심판을 강조합니다.(1:2-3; 2:4-5) 야웨의 날은

“주님께서 분노하시는 날

환난과 고통을 겪는날,

무너지고 부서지는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먹구름과 어둠이 뒤덮이는 날

나팔이 울리는 날,

전쟁의 함성이 터지는 날,

견고한 성읍이 무너지는 날,

높이 솟은 망대가 무너지는 날이다.” (습 1:15-16)

여러분에게 ‘주님의 날’, 그날은 어떤 날입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날이 구원의 날로 기다려지듯이, 야웨 신앙인들에게 야웨의 날은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그러한 구원의 날을 심판의 날로 의미를 뒤집어 선포한 최초의 문서예언자는 아모스였습니다. 아모스는 5장 18-19절에서 야웨의 날은 어두움이요, 그날은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다”고 묘사합니다. 말라기 예언자 역시 “하나님이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다”(말 3:2)고 묘사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스바냐도 야웨의 날은 분노와 환난과 고통의 날(1:15)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스바냐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남은 자’(2:3)라는 개념 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즉 야웨의 날에 하나님은 교만하여 자랑하는 모든 백성들을 제하시는 한편 그의 보호를 받지 않을 수 없는 겸손하며, 곤고하고(히, 아니) 가난한(히, 달) 백성을 남겨두시고 그들은 야웨의 이름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3:11-12).

스바냐서 전체가 하나님과 예언자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 데, 철저한 심판에서 구원의 희망으로의 전환은 하나님과의 끈을 놓지 않는 스바냐를 포함한 의로운 자의 호소로 가능합니다. 의로운 자들과 악한 자들 사이를 공식적으로 구별되어, 그 날은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며, 남은 자들에게는 긍휼과 기쁨의 날이 됩니다. 부패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명령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신앙을 잃지 않았던 ‘남은 자’들(2:3) 때문에 구원의 희망 예언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3:14-17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본문을 구조없이 보니까 핵심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서는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읽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정교한 문학적 기법으로 표현된 스바냐 3:14-17 구원의 기쁨과 그 이유, 그리고 “두려워말라”는 핵심 메시지를 잘 보여줍니다.

히브리 단어 혹은 구절의 반복으로 살펴본 스바냐 3:14-17은 다음과 같이 정교한 교차댓구법(Chiasmus)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교차댓구의 구조는 14-15절(ABCE)의 스바냐의 구원선포가 그날에 16-17절(D’C’B’A’)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문학적 효과를 나타내줍니다.

스바냐의 말에 바로 이어지면서 전체 스바냐 예언을 마무리하는 3:18-20의 야웨의 독백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구원을 재확인하며 예언서를 마무리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스바냐서를 마무리하는 ‘야웨의 독백’(습 3:18-20) 또한 반복을 통한 정교한 문학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두려워 말라”는 예언자의 위로와 격려는 야웨의 독백으로 재확인됩니다. 그들은 명성과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의 희망을 품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될 수 있는 것은 남은 자의 인내와 호소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읽은 신약본문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반대의 사례이지만 끈질긴 군중의 항변으로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 장면을 묵도하게 됩니다.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특별한 죄를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중의 끈질긴 항변과 요구로 예수를 넘겨주고, 그들의 뜻대로 십자가형을 판결합니다. 그들의 소리가 이겼습니다.

저는 무리들의 사악한 외침에서 “사랑하니까 혐오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악법”이라는 한국교회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의 모순된 외침을 듣습니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월 19일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 “국민청원제”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수렴하려는 선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여러분은 국민청원 동의수 TOP 3가 무엇일꺼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세월호 진상규명이 1등은 아니더라도 TOP 2, 3등에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최다 국민청원 1, 2위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된 청원이었고, 3위가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었습니다.

청원의 결과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책임이 강화되고, 디지털 성범죄 및 아동대상 성범죄 처벌이 강화되었습니다. 5년간 분야별 총 동의수를 살펴보면 첫 번째 관심을 보였던 삶의 가치는 “인권성평등,” “정치개혁,” “안전한 환경,” “보건 복지” 순이었다고 합니다.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저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슬로건을 “우리가 물으면 하나님이 답한다”로 바꿔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은 국민청원은 무엇입니까?

스바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약성서의 야웨 신앙인들은 하나님과의 변론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자신들의 신앙을 키워갔습니다. 스바냐에서 남은 자의 인내와 호소가 심판 속에서도 구원의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했고, 결국 구원의 하나님이 그들에게 칭찬과 명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처럼, 멈추지 않는 군중들의 외침에 빌라도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의 청원이 무엇이 되었든지, 그 청원이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혐오하고 짓밟는 교만한 자의 거짓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시편 기자가 119편 65-72절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면서 말하듯이 그 청원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입의 법에 부합되는 일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청원합니다. 그리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대하시리라 믿습니다. 그 길에 고난이 올지라도, 그 끝에 예비하신 기쁨과 노래를 바라보고 담대히, 두려워말고 나아가시는 생명사랑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