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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목사] 누구를 찾느냐? – 2022년 2월 20일

이사야서 556-13, 시편 4417-26, 요한복음서 2011-18

[20대 대선을 앞두고]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20여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대선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14일까지 모두 14명의 후보가 등록을 마쳤습니다. 각 후보들은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고, 저마다의 정책과 공약을 내놓으며 3월 9일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 중요한 선거가 4-5년을 주기로 돌아옵니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을 대신하여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뽑습니다.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는 국민 개개인에게 달려 있지만, 그 선택에 따라 국가와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 수도 있고, 혼란과 쇠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입니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님이 쓰신 한겨레 신문 사설을 참조하자면,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미래의 100년을 설계하는 선거이고, 둘째 선진국 반열에 오른 후 치르는 첫 번째 선거이며, 셋째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시대의 첫 선거입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은 근대적 국가로 발돋움했던 지난 100년의 경험을 토대로 급변하는 미래를 준비하며 새로운 도약을 하는 ‘역사적’ 전환을 이루어야 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였기에 외형적 성장을 넘어 내면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전환을 이루어야 하며, 자연환경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방식이 아닌 모든 생명체와 함께 공존하며 지속적인 사회를 이루는 ‘생태적’ 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1201.html)

따라서 우리 모두는 대통령 후보 중에 누가 과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가를 두고 함께 고민하면서, 각 후보의 자질과 직무 역량, 미래 비전과 공약과 정책의 실현 가능성들을 비교하면서 선거에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유지되고 발전됩니다. 성숙한 시민의 올바른 선택만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정치 경제, 예술문화, 외교 안보, 교육, 부동산 정책과 사회복지,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 등 우리 사회의 전 분야를 두고 각 후보가 토론을 하고 새로운 공약과 정책을 발표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함께 이 나라와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논의하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각 언론사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도하는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을 보면서 국민 또한 세상을 읽고 분석하는 관점과 능력 또한 상승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선거는 각양각색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각종 이권과 권력을 향한 욕망의 각축장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 구체적으로 나 자신에게 유리한가를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각자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투표를 하시겠지만, 이번 20대 대선은 좀 더 신중한 선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령 대통령을 뽑는데 개인의 기분과 형편에 따라 감정에 치우친 선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정권을 유지하든, 정권을 심판하든 간에 그런 선택이 우리 사회 전체가 나아지는 방향이 되어야지, 단순히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서, 각 인물의 인상과 호감도나 지역 감정에 따라서 선택되어선 안 됩니다. 정권을 갖기 위한 온갖 선거 전략이나 마타도어, 흠집 내기 및 거짓 뉴스에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면 이 나라 전체를 이끌어갈 역량 전체를 두고 절대평가를 해야 합니다. 사회의 각 분야를 두고 하나씩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후보 토론을 보면서 “생각보다 잘하는데”, “잘할 줄 알았는데 별로네”와 같은 판단은 기준이 잘못된 것입니다. 나라 전체 비전을 두고 무엇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하는 것이지, 개인적인 호감도나 기대치라고 하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역사적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대통령 후보들이 각 분야의 어느 정도의 전문가적 식견과 안목들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미래를 맡기려면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직무 역량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선되기 위해 마구 쏟아놓는 선심성 공약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앞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겠다는 누구나 약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실제로 해 내려면 과거에 어떤 일을 어떻게 해 왔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제가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담임목사 청빙에 지원하면서도 목회계획서를 썼는데, 그 계획대로 이 사람이 할 수 있나 없나를 살피려면 그 사람이 과거에 무슨 성과들을 내었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나라의 특수성과 지구 전체의 문제를 둘 다 고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우리의 미래가 평화 통일에 기반한 번영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분단체제의 적대적 관계 속에서 전쟁의 위협으로 불안을 가중할 것인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균형 외교를 통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처럼 한쪽 편만 들다가 쇠락의 길을 갈 것인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 인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기후 위기, 기후 재앙이라고 하는 현실입니다. 코로나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 속에서 발생한 코로나 판데믹은 지난 세월 인류가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발과 성장만을 강조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구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아니라 지구의 문제입니다. 모든 기업과 나라, 개인이 친환경 생태적 삶으로 바꾸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문제에서부터 자연과 인류의 불평등 또한 줄이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지금 하루에도 10만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의료 체계가 버텨낼 수 있는 방식의 방역체계로 전환해야 하는데,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 하는 것이 큰 과제입니다. 우리 정부와 방역 당국의 코로나 대처는 사회 전체의 봉쇄 없이(lockdown) 코로나 상황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것인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의 오미크론 확산의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으로 내려가는데 다른 나라보다 더 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2000만명 이상의 인구가 확진이 된 영국의 경우는 2-3주 만에 정점을 찍고 내려갔지만, 우리는 벌써 6주차에 접어들고 있고, 아직 언제까지 얼마만큼이나 더 확산될 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가천대 의대의 정재훈 예방 의학과 교수는 3월말까지는 한 달 내내 계속 정점을 찍다가 이후에 내려갈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합니다.

어찌되었든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세계적 전염병 확산은 앞으로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거의 모든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기후 재앙 시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 물밀 듯 밀려드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하여, 현명하게 이 파고(波高)를 넘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의 말씀은 깊은 탄식과 구원을 향한 절규가 들어 있습니다. 시편의 주인공들은 주님을 잊지 않았고, 주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배반한 적도 없으며, 주님께서 가라 하신 길에서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불행이 이들에게 덮쳤습니다. 이들은 탄식합니다. 주님께서 자신들을 승냥이 소굴에 밀어 넣으시고, 깊고 깊은 어둠으로 덮으셨다고. 이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잡아먹힐 양의 처지로 만들어서 날마다 죽임을 당하게 했다고 울부짖습니다.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는 불행이 찾아옵니다. 원인을 도대체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 보아도 실오라기 하나 잡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무작정 불행이 닥친 것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 “지옥”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천사’라고 불리는 반투명한 얼굴이 갑자기 어떤 사람 앞에 나타나 그의 이름을 말한 뒤 죽을 날짜와 시간을 예언하고, 고지(告知)한 시간이 오면 어김없이 3명의 괴물이 나타나 고지받은 당사자를 마구 폭행하고 강렬한 빛으로 죽여 버리는 사건들로 전체 줄거리가 진행됩니다. 오징어 게임 중 첫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탈락자들에게 총이 난사되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충격적이듯이, 고지를 받은 사람이 무차별적인 폭행의 희생물이 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이 또한 충격을 줍니다. 오징어 게임이 경쟁과 승자 독식의 사회에서 탈락했을 때, 패배자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면, 지옥은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한 개인에게 찾아오는 예기치 못한 불행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우며 무지막지한가를 여과 장치 없이 그대로 드러냅니다. 고지를 받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당사자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립니다. 다가오는 불행이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고 온몸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엄청난 불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간접적인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 틈을 타서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고, 공포와 불안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발생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이런 설정 속에서 바로 우리 현실과 만납니다.

불행이란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것이며, 불행이란 인간의 모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뛰어넘습니다. 불행은 그냥 이유 없이 닥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잘못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먹어야 살고, 쉬어야 삶을 유지하는 우리들이 지닌 한계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살면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나면 황당하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 바로 불행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고통이 우리의 삶을 파멸하지 않도록 견뎌내는 것입니다. 독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를 따지거나, 누가 화살을 뽑을까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기보다는 몸에 퍼져 나가는 독을 최대한 빨리 빼내고 해독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더 큰 혼란으로 가지 않도록 감정을 잘 추슬러야 합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들이 잘 한 것은 야훼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움의 손길을 구하며 스스로 그 불행의 늪에서 나오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깨어나십시오. 어찌하여 주무시고 계십니까? 깨어나셔서, 영원히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어찌하여 얼굴을 돌리십니까? 우리가 고난과 억압을 당하고 있음을, 어찌하여 잊으십니까? 아, 우리는 흙 속에 파묻혀 있고, 우리의 몸은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우리를 어서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

이들은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거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큰 고통 중에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아룁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악이나 잘못 없이도 이런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하나님이 알 수 없는 신비에 싸여 있듯, 고난도 깊은 모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울부짖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킵니다. 실컷 울고 나면 슬픔도 가라앉듯이 주님께 절규하며 닥친 고통에 대하여 충분히 감정을 해소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고통이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가지 않도록 새로운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고난의 신비와 집착에서의 해방]

오늘 요한복음서는 사랑하는 스승을 잃은 여 제자의 깊은 상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서나 마태, 누가복음서에서 여인들은 천사들을 통해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게 되지만, 요한복음서의 마리아는 천사 둘을 보고도 부활의 깨달음을 얻지 못합니다. 빈무덤을 목격하고 믿음에 이른 요한과 달리 베드로나 여인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성경 말씀도 이해하지 못했고, 천사가 예수님의 시신을 두었던 곳에 앉아 있음에도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합니다. 스승님을 잃은 슬픔만 가득하고, 시신을 누가 가져갔다고만 생각합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곁에 서 계신 것을 보았는데도 그가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감정과 인식이 감당하지 못할 사건을 겪게 되면 우리의 뇌가 멈춘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냥 막막한 기분만 들 뿐입니다. 한 걸음 나아갈 수도 물러갈 수도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그냥 털썩 주저앉게 됩니다. 지금 마리아가 그런 상태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부르짖었지만, 마리아는 그저 울고만 있습니다. 스승님의 시체만이라도 찾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합니다. 동산지기인 줄 알았던 예수님이 나지막하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셨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을 알아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선생님” 하면서 예수님께 달려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하십니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사람이 슬픔에 빠지든지 미칠 듯한 환희에 빠질 때면, 천지 분간 못하고 실수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온 세상이 달리 보이듯, 깊은 슬픔과 고통,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할 때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자기감정에 매몰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마리아는 자신에게 갇혀 있습니다. 주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알아보았을 때는 기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두 상태 모두 부활의 진실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변화, 이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달라진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과거의 그 예수님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여전히 “라부니”라고 외치면서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새로운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마리아는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어 하늘에 좌정하신다면 이제 이 땅에서 길이 되고 생명이 되고 진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더 이상 선생님을 붙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먼저 한 걸음 나아가는 선생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길을 여는 사람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부르라고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고 부르면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실 텐데, 바로 그 주님은 우리와 생각이 다르며, 우리가 가는 길을 언제나 넘으시는 분이며, 우리의 어떤 계획보다 높은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여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보다 못한 존재이거나 우리와 비슷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고 헤아릴 수도 없는 엄청난 가능성들을 실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희망이 되십니다. 우리가 마리아처럼 자신의 연민에만 빠져 있지 않는다면, 우리가 시편의 저자들처럼 주님께 부르짖을 수만 있다면 우리와 차원이 다른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를 이끄시는 분께서 우리를 평안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코로나 판데믹과 대통령 선거 등 우리 전체 삶을 뒤흔들만한 일들이 연속되는 이 때에,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큰 고통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슬픔에 젖어 살아갈 수도 있고, 계속되는 불안 속에서 헤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자이시고 스승이신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사랑하는 생명 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눈을 크게 열고 주님을 바라봅시다. 동산지기로 오해하지 맙시다. 눈 앞에 계신 주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고, 만날 만한 때에 찾읍시다. 과거에 집착하여 옛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하늘의 신비에 쌓인 예수님을 이 땅의 방식으로 붙잡으려고 하지도 말고, 오히려 주님을 찾아 하늘의 신비를 맛보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위기와 혼란이 고통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높으신 생각과 계획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언제나 우리 자신을 활짝 열어둡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딥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을 합시다. 여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제자들에게 가서 전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선포하는 첫 사도들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코로나 판데믹 시대, 새로운 종교와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때 우리 모두가 첫 사도들이 됩시다. 그 길에 저와 우리 생명사랑 교우들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코로나가 2년 넘게 계속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규 확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위중증 환자는 예전보다 적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달픕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고 힘도 빠집니다. 오셔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 코로나는 또한 많은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새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에 우리가 올라타게 하시고, 과거의 방식으로 옛날 가치에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시대의 소명을 분별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잘 감당해 내게 하여 주소서. 세상의 헛된 것이 아니라 참되신 예수님을 찾고, 주님께 부르짖고 간구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주님 속히 응답해 주소서. 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도 주님의 은총을 누렸사오니 올 한 해도 감사가 넘치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주님 올 한해,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코로나 19의 상황이지만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소서. 동시에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주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고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바로 알아듣고,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함을 마음속 깊이 깨달으십시오. 만날 수 있을 때 주님을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부르십시오. 그리하여 헛된 길에서 헤매지 말고 새 시대의 전령이 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어려운 시대에 주님을 찾고 부르며 주님과 동행하려는 생명사랑 교우들과, 이 시간 함께 예배하고 생명사랑교회를 지원하는 전국의 모든 믿음의 형제자매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