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세상이 아프기에 나도 아프다 – 2020년 5월 17일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
레위기 10장 1-7절, 시편 119편 33-40절, 마가복음서 15장 16-21절
[거룩한 공동체를 향한 치열한 훈련]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기를 모두가 바랬지만, 지난 연휴 기간 동안 우리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연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일 확진자가 2-30명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개인의 자유로운 사생활을 보장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찾아 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미국인들은 주 정부의 코로나 봉쇄령에 저항하면서 심지어 총을 들고 주 의회를 점거하는 사태도 발생하였습니다. 코로나 19는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게 하면서도, 기존의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였는지도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엄중한 일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40년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사장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로 세움을 받고,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전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나의 거룩함을 보이겠고, 모든 백성에게 나의 위엄을 나타내리라.”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하는 제사장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제사장들의 삶이 하나님 백성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된 것입니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올바른 기준과 목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규정이 없으면 흔들리기 쉽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작으나 건강한 교회’ ‘평신도 중심의 사역’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라는 정확한 목표가 있고, 그것에 따라 정관을 만들고 교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목회를 하면서 우리 교회의 세 가지 목표를 늘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매일 성소에 나가 하나님께 향을 피워드리며 자신들의 역할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확인했습니다. 정확한 예식과 절차들은 하나님을 향한 제사장들의 마음가짐과 태도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쉽지 않고,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몸이 가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지기에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이전보다 더 신앙훈련을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론의 첫째와 둘째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거룩한 제사의 엄중함을 우습게 여기고 율법이 정한 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30장 7-9절에는 제사장들이 분향단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향을 피우는 절차가 나오는데, 분향단 위에 율법에서 정한 향 이외의 다른 이상한 향을 피우거나, 번제물이나 곡식제물, 부어 드리는 제물을 올려놓아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이런 율법을 우습게 여기고 제단으로부터 불을 옮기는 그릇을 사용하지 않고, 각자가 제 맘대로 자신의 향로를 가지고 왔을 뿐만 아니라, 불씨도 제단의 것(레 6:12-13)이 아닌 다른 불을 사용합니다. 공적인 율법의 규범을 무시하고 제 맘대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아론은 하루아침에 두 아들을 잃습니다. 아론은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슬픔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오늘 모세는 아론과 아론의 남은 아들들에게 애도조차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마치 모세는 냉혈한처럼 보입니다. 차디찹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 가문의 두 아들의 죽음에 슬퍼할 수 있지만,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슬픔보다 제사장이 지니고 있는 공적 업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볼 때는 좀 너무하다 싶은 마음이 들지만, 지금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취미와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공적인 방역 시스템을 무너트린다면 공공의 질서를 담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엄격하게 다룰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엄격함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의 정신에 따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우리 또한 평소에 이런 태도와 자세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한순간의 방심이 큰 문제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늘 조심하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처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율례들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의 법을 살피고 지켜야 합니다. 바로 그 길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역사와 뜻과 사역에 몰두하고, 다른 탐욕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평소에 훈련해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자신의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이 시인의 마음으로 주님의 법도를 사모하며, 주님의 길을 활기차게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국가와 정부와 함께 협력하면서 국가가 미처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고, 세상 사람들이 지니는 상식의 바탕에서 그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과 정의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한국 교회에 큰 위기가 찾아 왔다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의 신앙이 빛을 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삶의 태도와 자세를 보여 줌으로써 이제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참된 진리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
그리스도인이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려면, 이 땅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지난 세월 동안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나섰기에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때에 존재의 가치가 있게 됩니다.
내일은 5.18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는 우리 교단은 매년 5.18 민주화운동기념주일을 지켜왔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아시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의 진압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인류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국가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여럿이 함께 모여 살아갑니다. 인류는 함께 모여 살면서 태풍이나 홍수, 기근과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해를 극복해 왔고, 집단 지성의 힘으로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둘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사람들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됩니다. 둘이 협력할 수도 있지만, 경쟁하기도 합니다. 갈등도 있고, 다툼도 발생합니다.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여 한쪽은 지배하고 다른 한 쪽은 지배당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적은데 우리들이 가진 욕망이 증폭되면 먼저 차지하려고 하는 투쟁과 아귀다툼이 벌어집니다. 거짓과 속임수,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게 되면 생존의 위협은 가중되고, 불안과 두려움, 온갖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욱 힘들어 집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우리들을 보호하도록,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다툼이 원만하게 그리고 정의롭게 해결되도록 하기 위해 인류는 법을 만들고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좋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에 의해 운영됩니다.
그런데 때로 국가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소수 기득권의 입맛에 맞춰 불의한 일을 행하기도 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가 지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도 생깁니다. 그래서 언제나 국가와 민중들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형성됩니다. 국민의 뜻을 잘 따르는 정부와 국가권력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민중의 생명력을 억누르고 국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국가와 정부도 있는 것입니다.
1961년 5월 16일, 군부가 무력으로 대한민국 국가 권력을 장악합니다. 군부의 중심엔 일제 강점기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동군 소위로 임관한 경력을 지닌 박정희가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과 농어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수출 중심의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을 내세워 개발독재를 하였고, 삼선개헌과 유신헌법, 긴급조치 등을 통해 영구집권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1979년 10월 16일 ‘부산 마산 민주항쟁’을 계기로 난관에 부딪치고, 열흘 뒤인 10월 26일, 부하였던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많은 국민들은 이 땅에 민주주의가 도래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습니다. 서울의 봄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12·12 군사정변’을 일으켰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군인들의 총칼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맙니다. 바로 40년 전 오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월 광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었을 때, 자신의 친구, 가족, 동료, 이웃이 바로 옆에서 죽어갈 때, 광주 시민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당했으며 이로 인해 유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여전히 상실의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며 외롭게 신음하고 있습니다.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쳤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다가 숱한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이들이 있고, 자신의 가족과 친구,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지 못해 밀려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억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5.18 민주화항쟁을 왜곡시키고 폄하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남북한의 분단체제를 이용하면서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등의 거짓 뉴스를 마구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좌익에 물든 폭도들의 난동이었다는 등의 유튜브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5·18민주화항쟁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군부독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이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으로부터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광주를 비롯한 전 국민이 보인 저항과 참여, 연대의식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 중요한 민주화운동 사례로 알려졌고, 2011년 5·18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습니다.
지난 번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다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실 것이고, 동학 혁명으로부터 3.1 독립만세운동, 4.19 혁명을 지나 87년 6월 항쟁, 2017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민주주의의 열망과 염원을 가지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그 한 가운데 5.18 광주 민주화항쟁이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언제든지 인권은 유린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합니다. 우리가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듯이, 5.18 민주화 항쟁도 늘 새롭게 마음에 되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판결문과 억지로 십자가를 진 시몬]
18세기 조선, 개혁군주라고 불리는 정조는 중앙 요직에 있던 다산 정약용이 반대파의 공격을 받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 잠시 황해도 곡산 부사직의 벼슬을 내립니다. 다산이 부임하기 전, 이 지역에는 농민 이계심이라는 이가 주동한 민란이 있었습니다. 군포(軍布) 비리가 만연하던 시절, 관에서 군포 대금을 200냥에서 900냥으로 대폭 올려 징수하자, 이계심은 농민 천여명을 이끌고 곡산 관아로 가서 항의시위를 벌입니다. 이 시위는 폭력적으로 해산되었고, 이계심은 수배자 신세가 됩니다. 부임을 앞 둔 다산에게 좌의정 김이소는 주모자는 물론 적극 가담한 자들을 잡아 사형에 처해 엄히 다스리고 국가질서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산이 부임하는 길목에 이계심이 갑자기 나타나 백성을 괴롭히는 열 가지 항목을 적은 문서를 전달하려고 했고, 관졸들에 의해 체포됩니다. 다산 정약용은 관아로 끌려온 이계심을 심문하고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내리고, 석방합니다. 그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통치자가 밝은 정치를 펴지 못하는 이유는, 백성들이 제 몸의 편안함만 꾀하느라 백성들을 괴롭히는 통치자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천금을 주고 사야할 사람이다.”(官所以不明者 民工於謀身 不以犯官也 如汝者 官當以千金買之也)
이계심은 훌륭한 지도자 덕분에 목숨도 살리고 존중받는 삶을 살게 되었지만, 오늘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시골에서 오는 길에 로마 병사들에 의해 예수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됩니다.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은 도시나 마을 밖에서 사형을 집행했는데 원래는 사형수가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갑니다. 예수께서는 채찍질을 너무 당하여 끝까지 지고 가실 수 없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한 사람을 징발하여 대신 지고 가게 했는데, 시몬이 지목된 것입니다. 시몬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로마 군대의 위력 때문에 겉으로 말은 못했겠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을 것이고, 그날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가복음서는 시몬을 소개하면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서 저자가 이들을 알고 있다는 얘기이고, 이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식 이름이고, 루포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자신의 아버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사실을 초대 교회에 알려 주었고, 그래서 이렇게 복음서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쓰는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루포와 그의 어머니를 언급(로마 16:13)하는데 만일 이들이 동일인물이라면 구레네 시몬의 가족은 초대 교회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서에서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께서 자기를 따라 오려는 사람은 모두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명시적으로 지는 사람은 유일하게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열둘이 아니라, 예수에게 고침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길을 지나가다가 걸려들었던 시몬이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충격이자 희망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 모두가 실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충격이고,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든지 선택하셔서 역사의 십자가를 지게 하신다는 것이 희망인 것입니다. 시몬은 그 십자가를 달게 받았고, 그의 가족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5.18 광주 시민과 전라도 도민들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 십자가를 이어나가는 길은 우리 사회 전체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주님께서 명하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저 내 한 목숨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멋대로 하다가 죽음을 당한 나답과 아비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불의한 권력이 시키는 대로 그저 그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목숨 바쳐 일하면서 훈장이나 타는 그런 삶 또한 십자가의 삶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밤을 낮으로 바꾸고, 낮을 밤으로 뒤바꾸며,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며,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고자 하는 그런 결단의 일입니다. 역사의 십자가를 이어가는 일은 몸은 죽어 땅에 묻혀도 우리의 혼과 넋은 살아서 자유와 해방,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며, 벽이라도 밀면서 문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불교 경전에 <유마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경전의 주인공은 유마 거사라는 분으로 출가한 승려가 아니라 재가 신자입니다. 한번은 이 유마거사가 병석에 눕게 되는데, 부처님이 제자 문수보살을 시켜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합니다. 병문안을 온 문수보살에게 유마 거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무지(無明)와 삶에 대한 탐욕이 생긴 지 오래 되었듯이 나의 이 병도 생긴 지 오래 되었습니다. 아득히 먼 과거부터 생사를 거치면서 모든 이들이 병들었기에 나도 따라서 병이 든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치유된다면 나도 따라서 치유될 것입니다. ~ 중략 ~ 세상이 병들면 저도 병들고, 세상의 병이 나으면 저도 낫습니다.”
세상이 아프기에 우리 모두도 아픕니다. 우리의 고통을 없애려면 먼저 세상의 고통을 치료해야 합니다. 온 세상을 치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꿈이셨고, 오늘 우리가 그 꿈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를 만들고, 십자가를 지는 일에 저와 여러분이 주역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세상을 치유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세상의 아픔과 이웃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신음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고귀한 하늘 자리를 박차고 땅으로 오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기를 내어 주신 그 예수님의 사랑과 정신을 우리가 이어가게 하여 주소서. 역사를 살아내고 만들게 하여 주소서. 아름다운 창조 세계가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우리의 믿음을 굳게 붙들고 주님의 약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게 하여 주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우리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우리를 지켜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자녀로 담대하게 살겠다고 매 주일 다짐하지만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다보면 어느새 흐트러진 우리들 자신을 보게 됩니다. 주님! 이 마음의 파도를 잔잔케 하소서. 몰아치는 광풍과 내리치는 폭풍을 진압하여 주소서. 주님 안에서 우리 영혼이 온전히 평화를 되찾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쉬시도록 우리 영혼이 고요함을 되찾게 하여 주소서. 오늘 주님 앞에 나올 때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을 드립니다. 이 감사의 예물 받아 주소서. 주님께 봉헌한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왕성하게 일어나는데 쓰이게 하시고, 우리의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세상의 통곡에 함께 울며, 세상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 모두 한몫 거듭시다.
* 축도
지금은 산 자에게 사랑을, 죽은 이에게는 평화를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사귐, 애틋한 위로가 세상의 아픔에 공명하여 치유자로 나서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코로나 19로 애쓰고 수고하는 모든 이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