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은총의 능력- 2020년 3월 15일

출애굽기 515-21, 시편 671-5, 로마서 323-31

 

[생태계 위기와 세계 윤리 구상]

지난 11일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즉 판데믹(pandemic)을 선언했습니다. 1968년 홍콩발 변종 인플루엔자로 인한 독감과 2009년 신종 플루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판데믹은 ‘대다수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WHO는 감염병 위험 수준에 따라 1~6단계의 경보 단계를 설정하는데, 판데믹은 최고 단계인 6단계입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에서 첫 코로나 19 발병이 보고된 이후 불과 70여 일 동안 확진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12만 명을 넘겼고, 사망자는 4300명을 넘어섰습니다.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는 최소 118개국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염병 대유행을 통해 세계 각 국가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가 다양한 뉴스들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전국 봉쇄령을 내렸지만, 만오천명이 넘는 확진자와 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탈리아 사례를 보고 봉쇄령이 아닌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있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유럽 사람들이 입국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일본은 중국과 한국인에게만 무비자 입국을 중단하고, 기존 비자에 대해서도 효력을 정지했습니다. 이런 모든 조처들을 살펴보면서 각 나라의 의료수준과 재난 처리 능력이 드러나는데, 우리나라의 질병 대응 시스템은 진단과 환자 격리 및 보호에 있어서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모범 사례로 언급되고 있고, 그래서 치사율도 매우 낮습니다. 전 세계 언론과 지식인들이 우리나라를 배우라며 자신의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우리나라의 대형 언론사들은 한쪽에 치우쳐서 중국 혐오와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보도를 하면서 일본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감추면서, 과도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켜서 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정부가 하는 일이면 사실 확인 없이 비난 일색의 보도를 합니다. 지난 촛불 혁명 이후 시민들은 날이 갈수록 앞서 가는데, 오히려 언론과 정치인들, 그리고 권력을 쥐고 있는 검찰의 개혁은 후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런 상황들을 잘 살펴서 사태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가 확실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전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 하나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모두가 어떻게 함께 생존할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0년에 『세계윤리구상』이라는 책을 내면서 문명의 충돌로 인한 인류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윤리가 필요함을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세계윤리구상』, 분도출판사. 1992. 독일 원서는 Projekt Weltethos, 영어번역본은 Global Responsibility.) 서로 다른 국가, 지역, 문화, 종교가 지닌 윤리적 명제가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인류는 하나의 지구에서 공존하기 위해 공동의 가치와 표준, 태도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첫 번째 원리는 “생명을 존중하라”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단순히 인간의 생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동안 인간이 피조세계 전체의 생명을 경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원인은 인구가 늘고, 동물에 기생하는 각종 바이러스들과 접촉이 늘고, 병원체의 전파를 확장시키고 가속화하는 국가 간 여행과 교역의 증가하며, 새로운 전염병을 대비하지 못하는 기존의 공중 보건 체계를 유지한 채, 항생제를 남용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산업을 발달시키고 국제교역을 늘리며 경제를 성장시켜오면서 오히려 우리들의 삶의 조건인 생태계가 파괴되었습니다. 동물들의 삶의 터전도 망가졌는데, 그 과정에서 동물들을 숙주로 하는 미생물들을 자극하여 질병으로 인간에게 되돌아온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지금까지의 삶을 전면적으로 바꾸라고 인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대 들어 ‘광우병’의 공포를 겪었고, 근래까지 매해 닭, 오리, 돼지, 소 등과 같은 가축들의 전염병을 겪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수백 수천만의 무죄한 생명들을 살 처분하고 시설들을 폐쇄하는 것으로만 일관해 왔습니다. 전염병에 상시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공장식 밀집형 가축 산업과 육식 위주의 식습관, 그리고 자원을 낭비하는 생활방식에는 손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한 우리의 행동들이 우리를 죽음의 위협으로 몰았다는 사실을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한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출현할 것이고, 그 때마다 인류는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시편 저자의 바램 : 모두가 신뢰하는 삶]

오늘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춰 주시어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달라고 간청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 19가 안정되어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편은 계속해서 모든 민족을 언급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이 강했지만, 그들이 신뢰하고 따르며 경배하는 하나님은 우주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민족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 신앙고백을 이어나가 언제나 인류 보편의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 가려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온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의란 모두에게 적용되는 올바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과 행동이 인류 전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모두 똑같이 해도 좋은 것인가를 물으면 우리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염병 확산에 주범으로 지목된 신천지의 나쁜 행위는 전도를 하면서 신천지임을 밝히지 않고, 거짓말로 속인다는 것입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듯이 신뢰가 없으면 모든 공동체와 사회는 무너집니다. 우리가 사 먹는 음식, 써야 하는 모든 제품들이 믿을 수 없다면, 공직자들을 믿을 수 없고, 의사를 믿을 수 없고, 학교의 선생님을 믿을 수 없다면, 부모가 자식을 믿을 수 없고, 국민이 국가를 믿을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공동체인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바로 그런 사회야말로 지옥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한 관계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질은 계속해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온 우주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은총 안에서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장벽 앞에서]

오늘 본문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큰 장벽에 부딪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지 않겠다는 모세를 설득해서 애굽으로 보냈지만, 최고 권력자인 바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광야로 가서 제사를 드리겠다는 아론과 모세의 말에 바로는 역정을 냅니다. 히브리 백성이 일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리고 짚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이전과 똑같이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작업량은 그대로이면서 스스로 재료를 구해오게 한 것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이제 히브리 노동자들은 두세 배 힘든 노동을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세상의 강자는 약자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 권력을 놓지 않습니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말에 거의 동의하지 않습니다. “게을러터진 놈들”로 낙인을 찍고, 일하기 싫기 때문에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윽박지릅니다. 이스라엘 출신 관리자들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힘이 작동하는 세계에서 힘 없는 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어떤 저항도 할 수 없고, 꼼짝 없이 하루아침에 이전보다 훨씬 고된 노동을 하게 된 이들은 이제 만만한 모세와 아론에게 비난의 화살을 쏩니다. 수평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평 폭력이란 거대하고 불의한 힘 앞에서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자신과 비슷한 처지 있는 약한 자들에게 쏟아 붓는 것을 말합니다. 악의 세력과 싸우지 못하고, 오히려 동지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기 때문에 새롭게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물거품이 됩니다. 모두 함께 협력하자는 제안은 언제나 자신들만 잘 살겠다는 이들, 남들을 눌러서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지 않겠다는 이들의 교묘한 꾀와 힘에 밀리고 맙니다.

또 오랜 시간 종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던 이들은 자발적 노예생활에 익숙한 터라, 근원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마음과 힘이 부족합니다. 먼저 깨인 사람들이 바꾸려고 하면, 노예근성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제 풀에 스스로 포기하거나 방해를 합니다. 개혁의 시도는 역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노력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실제로는 더 위험한 일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아직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개혁의 의지를 꺾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신은 바로 그런 어려움들을 뚫어내야 가능한 것이고, 그만큼 혼신의 힘으로 몸을 불살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참 자유를 찾던 이들은 외쳤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죽을 각오를 해야 오히려 사는 것입니다.(必死則生)

저는 앞으로 한국 개신교도 이런 위기 상황에 놓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어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 속에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불안하고 힘들어지면 교회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신천지가 아무리 자신들끼리만 천국을 만들려고 했지만, 바로 그러다가 이 사회에 엄청난 물의를 빚고, 이렇게 탈탈 털리는 상황이 된 것처럼, 하나님 나라 또한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이지 이 세상과 무관한 저 하늘에 만들 수는 없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면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게 되고, 그러면 준비할 수가 없어서 위기의 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작은 교회이고, 그래서 넉넉하지 못합니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잘 살아나가려면 가장 먼저 교인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는 기준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을 가지고 똘똘 뭉쳐서 세상의 흐름을 살피며 준비한다면 걱정 없습니다.

코로나 상황처럼, 앞으로 많은 장벽이 생기고, 담은 높아지고, 거센 풍랑 또한 몰려올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섰던 아론과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결국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내시듯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거친 풍랑을 이겨내고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 : 죄와 구원]

오늘 바울 사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욕망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좀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갈망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연결되면서 우리는 죄를 짓고 위기를 초래합니다. 우리 자신의 삶의 방식이 바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실수를 반복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입니다. 이것부터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늘 조심하고 신중하게, 남을 배려하면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실수를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실수를 줄일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첫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후, 모든 사회적 조건과 생존의 환경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소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근원에서 이탈하여 소외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기에 자유는 불안이 되었고, 노동은 고통이 되었으며, 삶은 두려움이 되고, 죽음은 공포가 되었습니다. 심판대에 좌정하신 창조주 앞에서 두려워 떠는 인간으로 설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인간은 오랜 역사를 거듭 살아오면서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문명을 만들었고, 지식의 양을 늘렸으며, 자연과학을 발달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아직도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면 불안을 잠재우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좀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 있으면 두려움이 덜하지 않을까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소유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과정에 또 고통을 양산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들의 행위로 완전한 삶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공로가 많다고 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행적은 오히려 사람을 교만하게 하거나 지치게 합니다. 능력이 많은 이들은 오히려 남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에는 늘 불평과 불만, 시기와 질투, 경쟁 속에서 눈치보고 싸우고 좌절하는 일들이 가득합니다.

이 모두를 뛰어 넘는 구원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처럼 2층 집에 사는 사람과 지하나 반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인생의 부조리를 극복하고 구원을 얻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선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셨다는 것이고,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셨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라고 바울 사도는 조언합니다. 즉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조건도 없이 주어졌으니 그 삶을 온전히 누리라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나 너의 삶이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우리의 입에서는 가장 먼저 감사가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닫는다면 매 순간이 새롭습니다.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죽은 우리를 살리셨으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기쁨의 화관을 써야 합니다. 남 탓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주어진 지금-여기에 충실하다면 매 순간 구원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주시고, 불완전하고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주님의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명을 찾고, 그 소명으로 주어진 삶에서 실현해 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그 하루하루의 삶이 은총으로 구원의 능력을 맛보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크신 은혜를 구하며 기도드립니다. 신종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전 세계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 때에, 우리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십시오. 우리들의 무지와 탐욕이 불러 온 일이 아닌지 성찰할 뿐만 아니라 빠르게 모든 혼란을 극복하고 대처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십시오.

주님! 상황이 어려워도 우리는 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예수를 보시고,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고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결코 의롭지 않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보아 주시기에 우리는 그렇게 살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은혜를 잊지 않으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진리의 길을 걷는 사순절의 절기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묵상합니다. 우리 모두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게 하소서. 예배당에서 모이지 못한다고 하여도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나아갈 길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설익은 믿음이 아니라, 존재를 거는 신앙이게 하소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영적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고, 어떤 유혹이나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여 주소서. 한 겨울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듯이,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능력으로 코로나 19가 빨리 안정되고, 위축된 우리 삶에도 봄날이 찾아오게 하소서. 죽음의 그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우리와 늘 함께 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값없이 베푸시는 주님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십시오. 사랑의 자유를 지니고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십시오.

* 축도

그리스도의 온기가 여러분들을 치유하고, 그리스도의 눈이 여러분들을 응시하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은총의 능력으로 나와 이웃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헌신하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