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치유하는 사람들 – 2021년 7월 18일

전도서 51-2, 시편 151-5, 마태복음서 935-104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욕창들]

한 달에 한 번씩 천철우 집사님이 운영하고 있는 정성한의원에 방문해서 직장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없이도 매일매일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데 저는 한 달에 한 번 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천철우 집사님과 한의원 운영에 대해서 대화를 나눕니다. 매일 수십명의 환자를 대하는 천 집사님이 제게 늘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환자들이 느끼는 많은 통증과 고통들은 잘못된 생활 습관이나 마음의 병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은 침과 약으로 완화하고 낫게 할 수 있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생긴 마음 속 깊은 상처와 잘못된 식생활, 몸의 자세, 생활패턴 등을 바꾸고 치유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고통과 통증이 찾아온다는 것이지요.

우리들 모두는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밝고 쾌활하게 하루하루 삶의 보람을 느끼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실로 우리들의 삶은 비단길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복잡다단한 우리네 삶은 늘 여러 가지 일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울고 웃으며 하루를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지난 7월 첫째 주에는 기획관리부 주관으로 이런 우리들의 삶과 욕망을 잘 드러낸 영화 한편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작이었던 <욕창>(2019, 심혜정 감독)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공무원 생활을 은퇴한 주인공 강창식은 수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거동조차 불편한 부인 나길순과 살고 있습니다. 강창식은 자기 스스로 밥상 하나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가부장적인 남자로, 평생 아내와 자식 위에 군림해왔습니다. 아내가 쓰러지고, 몸에 욕창까지 생기자 매우 신경이 쓰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따로 살고 있는 자식들은 조선족 출신의 불법체류자 간병인을 두는데, 이 여성은 창식의 집에 함께 살면서 정성껏 길순을 간병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합니다.

창식과 길순의 딸 강지수는 남편과 간병인 수옥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매우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그뿐입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돌아오지 않는 작은 오빠, 삶에 의지를 잃어버린 무능력한 큰 오빠를 대신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만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상황이 마음을 짓누르는데다가 남편은 바람을 피는 것 같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까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버겁게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이런 상황인데 주인공 강창식은 다정다감하고 싹싹한 간병인 수옥에게 연모의 감정을 느끼고, 수옥과 위장 결혼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자식들과 큰 갈등을 겪게 됩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자신의 아내 길순을 버리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 너네 엄마를 위해서야!”라고 자식들에게 항변하는 창식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위해 수발을 들어 줄 수 있는 수옥을 향한 불순한 의도가 강하게 섞여 있습니다. 한편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좀 더 오래 한국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수옥 또한 창식의 기가 막힌 제안을 섣불리 거절하지도 못합니다.

간병인과의 위장 결혼 이야기까지 꺼내는 아버지에게 분노한 자식들은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엄마는 요양병원 보내시고, 아버지는 실버타운 가시면 되잖아요!”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그 장면들 하나하나가 우리들 삶에서 있을 법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위하면서도 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발에 떨어진 불똥부터 처리해야 하는 그 상황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측은한 마음이 들게 만듭니다.

영화의 한 장면 중에 방문 간호사가 길순의 욕창을 치료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욕창은 겉에서 봐서는 몰라요, 속이 얼마나 깊은지가 문제거든요” 방문 간호사 선생님이 말한 대로 우리네 삶도 겉으로 봐서는 잘 모릅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겹겹이 쌓인 문제들이 있고,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서로 감상을 나누는 시간에 전사례 권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욕창에 걸린 건 나길순이지만,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다 마음에 병들이 있어서, 제목을 욕창이라고 하기 보다는 만신창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제자들의 사명]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서의 말씀에는 제자들을 찾으시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들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십니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병들어 있었고 아파했고, 속이 문드러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와 지역, 문화는 다르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는 이들에게 무한한 연민을 느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치게 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이라고 번역된 것은 “더러운 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마다 반대하며 트집 잡고 방해하는 세력들을 가리켜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충분히 좋아서, 누군가 일부러 망쳐놓지만 않는다면 제각기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은 전능한 힘을 가지려는 또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 주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 게으름, 시기와 질투, 더 소유하려는 욕망, 자신의 것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일시적이고 허망한 것들에 대한 집착이 인간들 사이에서 싹트고 그래서 세상에는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 사이에서 온갖 고통과 상처와 아픔들이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온갖 허약한 이들을 치유하시는데, 이것이 지속되려면 강하고 부유한 자들의 변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 옛날 이사야 예언자가 말씀하신대로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어야 가능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사자나 이리가 풀을 뜯을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상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회적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가 훨씬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남들 위에 서서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욕망을 거둘 때, 우리 사회의 고통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해야 사회적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내어 줄 마음을 갖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날 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자신의 모든 성공과 부와 명예가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이라는 고백이 있을 때에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온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먼저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과 배움이 있을 때, 사람은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요사경회를 하고, 영상을 통해 신학과 그리스도교 신앙 강좌를 하고, 여러 곳에 강의를 다니면, 종종 자신의 것을 나누시려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분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감동을 받으신 분들이 우리 생명사랑교회에 후원을 해 주셔서 우리 교회처럼 작은 교회가 세 분의 목사수련생을 둘 수 있었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 삶의 우선 순위를 바꾸고 참된 삶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부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바꾸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치유하는 이들]

오늘 시편의 구절은 하나님의 장막에 머물 수 있는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을 치유하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이들인지 그 목록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시편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런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 사람이 여러분과 매우 막역한 친구라면 여러분 어떨까요?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가득한 공동체를 만나면,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10여년 전에 저희 부모님께서 매우 억울한 일을 당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결국 민사재판까지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쪽에는 저와 어머니가 있었고, 상대편은 변호사까지 대동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상황의 전말을 파악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서 상대편 변호사가 자진해서 잘못했다고 말하고 모든 재판을 철회하였습니다. 그 재판으로 우리 어머니의 억울함과 분노가 가라앉았고 마음에 묵은 한이 풀어졌습니다.

우리들 곁에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진실이고, 손해를 보더라도 맹세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주변은 한결 밝아지고 희망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상상이 잘 가지 않으신다면 시편 저자가 말한 반대의 사람을 떠올려 보시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이익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요, 허풍인 사람, 남의 허물을 들춰대며 뒷얘기를 하는 사람, 친구도 이용해 먹는 사람, 자기의 이웃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도 두려운 마음 하나 없이 으스대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람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뇌물을 받아먹고 편의를 봐 주어서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공동체 속에서 여러분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모두는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미움과 배제, 욕설보다는 사랑과 포용, 칭찬과 배려 깊은 말을 좋아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타고난 본성은 진실하고 아름답고 착한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제자들은 바로 사람들이 지닌 이런 양심들을 살려 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역이 바로 치유의 사역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로 이런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한 몸 잘 사는 것에서 멈추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을 돕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절망과 좌절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 30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잘 꾸려가는 것을 볼 때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결혼해서 둘이 함께 좋은 가정을 만들 때 참 좋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부모의 심정도 깨달아가면서 삶이 무르익어 갈 때 참 좋습니다. 1인 가구로 홀로 살지만 주변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멋지게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어르신들이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일을 찾으며, 주님의 일에도 헌신하며 각자가 맡은 역할들을 잘 해내시는 것을 볼 때 매우 흡족하고 행복합니다. 이제 머지않아 100세가 되시는 정금례 권사님의 건강하신 모습만 뵈어도 우리 모두는 내면으로부터 힘이 솟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서로 치유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만 살아내도 그것 자체로 치유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다른 교회 교인 중에 오래도록 신장이 좋지 않아 오랜 세월 투석을 받아야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최근에 쓰신 페이스북의 글을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투석을 오래 하다 보니 많은 간호사를 보게 된다. 예전에는 친절한 간호사가 좋았는데 요즘은 섬세한 간호사가 마음에 든다. 예전에는 투석하는 팔에 주사를 맞는 게 겁나지 않았는데 요즘은 겁이 날 때가 있다. 주사를 조심스럽게 놓지 않고 쑤셔 넣는 느낌이 드는 간호사가 있다. 성격인지 주사 놓는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간호사다.

특정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것이 아니라 오는 순서대로 주사를 맞기 때문에 간호사가 매일 바뀐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간호사가 왔다. 이 간호사가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주사를 놓을 때도 조심스럽게 아프지 않게 놓으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특히 주사를 고정하는 반창고를 붙일 때 섬세하게 붙여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소한 곳에서 안정감을 받는다.

반대로 불편한 간호사가 있다. 표현을 하지 않지만 그 간호사가 오면 마음이 불안하다. 굵은 주사 바늘을 꽂는데 조심스럽지가 않다. 이 간호사가 찌르면 대부분 아프다. 요즘은 안정감을 주는 간호사보다 불편한 간호사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 슬프다. 아마도 내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가 보다.

그런데 간호사들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간호사도 ‘오늘은 제발 저 환자와 만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환자 입장에서 불편한 간호사가 있듯 간호사 입장에서도 불편한 환자가 있다. 나도 어떤 간호사에게는 불편한 환자일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불편한 마음을 내 보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표정이나 말투로 나올 때가 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오지 않는 간호사가 있다. 내가 불편한 만큼 상대도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오늘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있고, 또 때로 누군가에 병을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년 4월 12일 부활절 오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는 코로나로 봉쇄조치가 되어 텅 빈 두오모 대성당에서 진행된 공연 영상을 하나 올렸습니다. 공연의 제목은 “희망을 위한 음악”이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bpXwOSHTwsY). 인터넷 영상은 안드레아 보첼리가 홀로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부르는데 화면은 계속 코로나 19로 텅텅 빈 유럽의 도시들을 비춥니다. 보첼리는 시각 장애인인데, 찬송가의 영어 가사는 “Was blind but now I see”입니다. 눈 멀었던 내가 이제 보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이 찬송을 작사한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은 원래 노예무역을 하던 사람이었고 선장까지 지냈지만, 성공회 사제가 된 뒤 이 모든 것을 뉘우치고 노예폐지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사람을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으로 거듭난 후 그렇게 이끌어 주신 주님의 은총을 기리며 눈멀었던 자신이 눈을 떴다고 가사를 쓴 것입니다. 보첼리의 이 영상은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보첼리는 자신의 목소리로 전 세계 사람들을 치유하였습니다.

오늘날 코로나는 우리들이 새로운 눈을 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눈멀어서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수단으로 이용해 먹었다면 이제는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도록 권면합니다. 이제 인류는 지구 위에서 치유하는 사람들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출신 성분도 다르고 서로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운동의 방식도 달랐지만, 예수님을 따라 치유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 생명사랑 교우들도 모두 그래야 하고, 지금 전국에서 예배하고 있는 성도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계신 자리에서 치유하는 사람들이 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갑시다. 어떤 사람들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우리 모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조심스레 하나님 앞에 나와 진정으로 말씀을 들을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들은 땅에 있으니,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는 부족하니,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니 함부로 많은 말을 하지는 맙시다. 너무 조급해 하지도 맙시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분주한 삶에서 한 발 물러섭시다. 주님께서 하시도록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과 몸짓이 치유의 사역이 되도록 늘 조심합시다.

영화 욕창에서 강창식의 아내 나길순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합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몸을 겨우 가눌 수 있습니다. 하루는 그의 딸 강지수가 버거운 삶을 가득 않고 엄마 침대에 엎드려 넋 나간 사람처럼 있는데, 엄마 나길순이 다쳐서 석고붕대로 고정시킨 팔을 간신히 들어 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줍니다. 식물인간처럼 되어버린 엄마의 작은 손길에 다 큰 딸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맙니다. 우리 모두는 치유 받아야 할 상처들을 하나씩 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동시에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슬아슬한 삶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 위로하고 걱정하고 도우며 치유하는 사람들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치유했던 경험을 하였고,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몸소 달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하나님! 우리들에게 삶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게 하여 주소서. 주님 앞에서 우리들은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있어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깊이 생각하여 주시고,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의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살이에서 받은 상처들을 주님의 귀한 피와 눈물로 보듬고 매만집니다. 우리 또한 치유하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서로 치유하고 치유 받는 삶을 살게 하여 주소서. 가뜩이나 힘든 시기를 지나는 동안 늘 조심하여 서로에게 힘이 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참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이 좋은 날 우리 모두를 주님 앞에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예배하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주님의 따뜻한 빛을 쪼이니 지난 삶의 구김살들이 살살 펴지고, 주님의 자애로움과 미소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우리의 모든 이웃이 주님의 향기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은총에 감사하여 오늘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생명을 살리고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날마다 진보하게 하시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시며, 늘 우리를 보살피십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평안을 누리십시오.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안달복달 하지 말고 믿음으로 꿋꿋하게 이겨나가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친교가 치유하는 사람들이 되어 주님의 장막과 거룩한 산에 늘 거하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전국에서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