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이상중 목사]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 2026년 04월 26일

이사야서 63장 7-14절, 요한복음서 21장 1-14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가 누려야 하는 평안은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 풀릴 때 누리는 평안이 아닙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될 때 누리는 평안도 아닙니다. 내가 기대한 결과가 나와야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평안이라면, 우리는 자주 평안을 잃을 수 있습니다.

성도의 평안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는 사실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일하고 계십니다. 이 믿음 위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와 요한복음의 말씀이 이렇게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이 늘 이스라엘 백성의 삶 한복판에서 함께 계셨음을 증언합니다. 오늘 이 두 본문의 말씀을 통해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이사야 63:7-14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시작합니다. 하지만 찬양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찬양으로 선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지금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왜 우리가 지금 이러한 고난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실패의 상황 분석,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아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판단하기는 쉽습니다. 비난하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과 비난은 성도나 교회 공동체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이 될 수 없습니다. 비난과 판단은 공동체를 성장시키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과 자비 없이 말해지는 비난과 판단은 공동체를 성숙, 성장케 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공동체를 파괴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사야의 우선순위는 우리의 계획, 능력, 판단, 경험, 기준이 이스라엘 백성, 믿음의 공동체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가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는 우선순위의 앞에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대신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마음에 각인 되어야 할 점이 있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자가 되시는 분이시다.’

이게 중요합니다. 신앙은 언제나 현실보다 하나님을 먼저 보는 데서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라는 고백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지금 고난을 겪게 되었는지가 나옵니다. 10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고, 그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도리어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친히 그들과 싸우셨습니다.”

참 무거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기 백성의 대적이 되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과 싸우실 수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대적이 되셨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말 포기하셨다면 그냥 내버려 두시면 됩니다. 정말 관계를 끝내셨다면, 굳이 아파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굳이 성령께서 근심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에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가만히 놔두지 않으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꾸짖으십니다. 잠언 3:12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꾸짖으시니, 마치 귀여워하는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와 같으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가끔 고난 가운데, 실패 속에서 이렇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이 아무 일도 안 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떠나신 적이 없으시며, 오히려 자기 백성이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하는 그 현실 속에서, 여전히 아파하시고, 여전히 붙드시고, 여전히 일하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신앙은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 하시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이 과정 속에서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라는 질문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63장에서 백성은 현재의 고통 속에서 과거를 기억하며 질문합니다. “백성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분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들 가운데 거룩한 영을 넣어주신 분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들을 인도하신 분은 어디에 계시는가?”

이 질문은 불신앙의 질문이 아닙니다. 이건 믿음의 몸부림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들은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자기 백성을 바다 가운데서 건져내시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광야를 지나게 하시고, 쉬게 하시고, 인도하시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왜 기억합니까? 기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오늘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다시 붙드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억하면서, 오늘도 여전히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희망입니다.

요한복음 21장도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이야기합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보고, 듣고, 경험했지만, 예수님이 부탁하신 말씀은 잊은 채 다시 익숙한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장면이 우리와 닮아있습니다. 은혜를 받았음에도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습니다. 말씀을 들었는데도, 다시 익숙한 방식으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데도, 막상 현실 앞에서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실패의 한복판으로 예수님이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지켜보시기만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왜 거기로 돌아갔느냐?”라고 책망부터 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이 가장 지치고, 가장 허기지고, 가장 공허한 그 새벽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 한복판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고기 잡는 기술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는 처음 부르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밤새 수고했으나 얻지 못했던 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풍성함이 임했던 순간, 처음 자신들이 부름 받던 순간, 그 기억을 다시 깨우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왜 내가 처음 이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무엇이 나를 울게 했고 감사하게 했는지, 무엇이 내 삶의 방향이었는지, 왜 내가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지, 왜 우리가 이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말씀으로, 사건으로, 때로는 실패를 통해서라도, 다시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성도에게는 실패가 끝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빈 그물이 다시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는 은혜의 사건으로 변한 것처럼, 우리 삶에도 빈 그물이 끝이 아닙니다.

이어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땅에 올라왔더니 무엇이 보입니까? 숯불이 있고, 생선이 있고, 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참 따뜻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처럼 예수님 역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간 제자들의 실패를 묻지 않으십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부터 세우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숯불과 생선과 빵을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은혜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공이 예수님의 식탁을 가능하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준비하신 은혜의 식탁에 우리가 참여할 뿐입니다.

우리는 자꾸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잘해야 하나님이 일하실 것 같고, 내가 뭔가 이뤄야 은혜가 임할 것 같고, 내가 성과를 내야 하나님 뜻이 이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먼저 준비하시고 뒤에 참여하여 경험할 뿐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평범한 예수님이 차려주신 식탁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던 평범한 일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예수님이 빵을 떼어 주시던 순간, 함께 먹고 마시던 시간, 말씀과 식탁과 웃음과 눈물이 함께 있던 시간, 예수님과 함께했던 평범하지만 따뜻했던 일상이 다시 이들의 기억에서 살아나지 않았겠습니까?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환대와 사랑이 묻어 있는 평범한 일상의 방식, 그 기억들을 상기시키심으로 제자들을 깨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이렇게 평범한 일상의 방식을 통해 회복시키시고, 깨우십니다. 다시 밥을 먹게 하시고, 다시 하루를 버티게 하시고, 다시 예배 자리에 앉게 하시고, 다시 말씀을 듣게 하시고, 다시 서로를 바라보게 하시고, 다시 함께 울고 웃게 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일상은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는 자리입니다.

이사야 63장도 마지막이 참 좋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들을, 마치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떼처럼, 편히 쉬게 하시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몰아붙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 먼저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고, 먹이시고, 쉬게 하시고, 그리고 다시 걷게 하십니다. 우리 공동체가 선택해야 할 방식이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의 계획이 잠시 멈춰 선 것 같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공동체 역시 이러한 주님의 방식을 기억하며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제직회를 통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교육부 공간 마련을 위한 안건을 두고 찬반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많은 분이 오랜 시간 마음을 쏟으셨고, 기도하셨고, 생각하셨고, 고민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찬성 23표, 반대 28표로 부결되었습니다. 이 결과 앞에서 여러 마음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결과를 너무 쉽게 “이게 곧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과 하나님의 뜻을 너무 단순하게 곧장 일치시켜 버리는 것은 조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결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이다, 가결되었으면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반을 넘어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결론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고백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의 바깥에서 구경꾼으로 계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인내하고 계셨고, 서로 다른 생각과 염려와 기대가 오가는 그 숙의의 과정 한복판에 함께 계셨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의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 가운데 성령을 두시고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빈 그물만 남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새벽에 와 계셨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계획으로는 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한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다 보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아직 그 길을 다 알지 못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상상보다 크고, 우리의 계획보다 넓고, 우리의 이해보다 깊은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고백은 “이제 끝났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진지한 고민과 기도와 기다림의 한복판에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앞으로도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을 이끄시리라는 고백입니다.

이사야의 백성은 반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의 제자들은 다시 바다로 갔습니다. 밤새 애썼지만 빈 그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찾아오셨습니다.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길을 잃을 때 예수님은 먼저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빈손일 때 하나님은 이미 식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실패 가운데 계십니다. 숙의의 과정 가운데 계십니다. 빈 그물의 밤 가운데 계십니다. 공동체의 답답한 시간 가운데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한복판에, 우리 삶의 새벽에 서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바깥에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함께 인내하시는 분입니다. 때로는 우리보다 더 아파하시고, 우리보다 더 오래 기다리시며, 우리보다 더 깊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지, 우리 공동체를 어떻게 여기까지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은혜의 식탁을 차려 놓으시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준비하신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우리 공동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