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중 목사] 나아가거라, 성 밖으로 나아가거라! – 2025년 12월 14일
이사야서 62장 10-12절, 히브리서 11장 32절-12장 2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평안은 어떤 이들이 누릴 수 있습니까? 부유한 자가 누릴 수 있습니까? 권력을 가진 자가 누릴 수 있습니까? 인정을 많이 받는 자가 누릴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늘 불안해합니다.
그러면 평안은 어떤 이들이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평안을 누립니다.
삶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셋째주일이자, 인권주일입니다. 오늘 두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성도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먼저 이사야 62장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통일 이스라엘이 솔로몬 사후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고, 1차로는 721년 북이스라엘이 2차로는 587년 남유다가 멸망한 뒤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망은 메시아가 나라를 해방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멸망 후 50년 또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된 바벨론에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해방에 의한 귀환은 아니었지만, 고레스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고향, 자신들의 터전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귀환한 백성들은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예루살렘을 보며 당황하고 절망했습니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 구성원은 포로 2세대 3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옛 예루살렘은 본 적이 없고 다만 부모와 조상들로부터 이야기로만 들어 상상만 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막상 귀환해서 경험하게 된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상상과 생각,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도 자신들의 안전을 책임질 높은 성벽도 사라진 채, 폐허 위에 예루살렘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나라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모인 남은 자들과 귀환자들을 향해 ‘버림받은 자’라고 불렀고, 예루살렘을 ‘황무지’라고 표현했습니다.(이사야 62:4)
이방 민족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에게 ‘너희들에게 과연 신은 있느냐?, 이렇게 폐허가 된 곳에서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사야의 말씀은 이런 상황에서 선포되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자리, 절망의 자리, 의지할 무엇도 보이지 않는 자리. 스스로들이 왜 돌아오려고 했던가 의심이 드는 자리.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절망과 의심의 자리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10절)
폐허가 되어버린 성안에 있는 것도 힘든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 바깥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성 바깥에서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이렇게 길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보아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11절)
하나님이 구원자가 되셔서, 남유다가 멸망한 이후 흩어져 있던 돌아오지 못한 남은 백성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친히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라고 요청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방 민족들의 시각으로 보면, 깃발을 올리는 광경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다. 영락없는 패배자의 모습을 하고서, 승리의 깃발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안이 폐허인 상태여서, 이런 폐허가 된 곳에 누가 온다고 성안 정비가 아닌 성 밖에서 길을 닦는 모습은 정말 희한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야, 너를 좀 봐! 너부터 살고 봐야 하지 않겠냐? 네 분수를 알고, 네 삶이나 잘 가꿔.”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아직 볼 수 없는 사람들, 아니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 나의 안위를 위해 일하는 삶도 바쁜데, 성 밖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요. 신기하게도 성경은 이렇게 나의 삶도 불확실하고, 말씀대로 사는 삶도 불확실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간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렸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32절부터 37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예언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불확실한 삶을 향해 뛰어든 사람들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34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실한 무기와 군대가 아니라 ‘믿음으로’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 약한 데서 강해진 사람들입니다.
“35 믿음으로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간 까닭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믿음으로”라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다고 이어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남들처럼 삶을 살아갈 수는 없었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 그렇구나!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건, 믿음으로 살아간 삶의 끝은 어쩌면 이럴수도 있겠구나.’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니는 삶. 참 싫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음대로’ 살아간다는 건, 세상이 받아들일 수 없어서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니는 삶입니다. 성도님들 이제라도 도망가십시오. 우리는 디디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딛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속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속인 적이 없으시고, 말씀도 속인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우리의 어긋난 시각과 욕망으로 잘 못 받아들여 타인과 우리 자신을 속였을 뿐입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니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위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예측 불가능한 사람들이고, 걸어가 보지 않은 위험한 길로 안내하는 사람들이고, 실패가 뻔히 보이는 길로 안내하는 사람들로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오늘 많은 교회와 목사 그리고 성도들은 예측이 가능한 일, 계산이 서는 일만 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을 가신 적이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깃발을 들고 이미 승리한 사람처럼 돌을 걷어내고, 하나님이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닦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도 믿음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폐허가 된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나아가거라! 성 밖으로 나아가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오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우리의 성 밖은 어디이고, 닦아야 할 길과 치워야 할 돌은 무엇이며, 그렇게 기다려야 할 구원받은 백성은 누구입니까?
이사야서는 포로 된 백성, 결박 된 백성, 흩어져 있는 백성이 하나님이 다시 구원해서 돌아올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한 이들,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이들이 바로 오늘 하나님이 다시 구원해서 돌아올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길 때문에 돌아올 수 없다면 보이는 길을 만들어야 하고,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돌이 있다면 이 돌들을 저와 성도님들이 걷어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오늘날의 누구이며, 어떤 길과 돌이겠습니까? 4년이 넘게 추운 길 위에서, 300일이 넘도록 바닥보다 더 추운 고공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를 외면하는 우리 안의 ‘무관심의 돌’,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 조직, 체계를 다시 닦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도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고 싶다.”라는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을 닦아야 하지 않을까요?
12월의 혹한 속에서도 여전히 비닐하우스 숙소, 난방도 전혀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서 떨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돌’이 아닐까요?
삶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바깥으로 밀려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 여성 등을 비롯한 많은 사회적 약자를 넘어지게 하는 그 돌을 걷어내고, 잃어버린 길을 찾아 닦아내는 것이 오늘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요?
우리가 이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처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믿음으로’ 시작한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시작된 돌을 걷어내고, 길을 닦는 일을 이어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4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살았던 자들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온 그들의 삶을 이어받아야 그들의 삶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으로 믿음의 삶을 이어받아야 할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리서 12:1-2)
우리 역시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바라봅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돌을 치우지 않으면, ‘믿음으로’ 살아간 조상들의 삶이 미완성으로 남습니다. 믿음으로 이미 시작한 사람들의 헌신이 미완성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하나님의 역사가 완성됩니다.
그렇기에 성 밖으로 나아가 길을 닦고, 돌을 걷어낼 때 어떤 결과가 있는지 이사야 62:12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할렐루야.
“나아가거라, 성 밖으로 나아가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고, 깃발을 높이 들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어야 할 자리, 삶의 자리로 다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닦고, 돌을 걷어내는 성도, 우리 생명사랑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불편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이라고 불러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