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이상중 목사] 생명의 틈이 되는 교회 – 2026년 01월 04일

사도행전 10장 10-20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2026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심을 깨닫고 언제, 어디서나 평안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책의 내용을 먼저 나누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가 2025년 12월에 선정한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의 내용입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삶을 살아온 그러나 흔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 ‘예순 살의 가출 인생을 읽다.’라는 부분에는 1926년에 태어난 아일랜드 출신의 진 할머니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절대적으로 순종을 강요하는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그러다 보니 사춘기를 겪으며 하루빨리 부모님에게서 벗어나는 ‘독립’을 가장 원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하기보다 탈출을 위한 목적으로 처음 중매인이 집에 찾아왔을 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남편감이 누구지 알기도 전에 승낙을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남편은 매우 엄격하고 딱딱한 사람이었고, 취미도 친구도 재미도 없는 남자였습니다. 결혼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여행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고, 집이 아닌 곳에서 머물러본 경험조차 없이 그렇게 직장과 집밖에 모르는 재미없는 남편과 40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단지 살았을 뿐 어떻게 숨 쉬었으며 또 어떻게 그 많은 날을 보낼 수 있었는지 기억할 것조차 전 무한 황폐한 시간이었다.’, ’내 평생의 소원이 집 밖에서 한번 자보는 것이었다.’라고 진 할머니는 남편과 보낸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진 할머니는 자신이 내일 모래면 예순이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60이라는 숫자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았어요. 잘못하다가는 평생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겠구나. 평생을 남편 눈치나 보면서, 내 자신을 찾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절박해졌조. 결국 생일 하루 전, 엄청난 결심을 했어요. 가방을 싸고, 집을 떠나기로 한 거죠.”

책의 저자가 진 할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럴 거면 진작 헤어지지, 왜 예순 살까지 버텼어요? 나이에 비해서 너무 용감했던 거 아니었나요?”

그러자 진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맞아요. 너무 무모했죠. 너무 용감했고. 물론 수백 번 수천 번을 망설였어요. 집을 떠나면서도 몇 번이나 돌아보고, 수없이 멈춰서서 다시 돌아갈까 했고, 역에서도 기차에 올라타기 전에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았으니까.”

사랑은 없었지만,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남편에 대한 의무감, 자식들이 얼마나 놀랄까 하는 두려움, 40년 동안 살아온 익숙한 곳을 떠나는 아쉬움, 게다가 그 세월 동안 사귄 좋은 친구와 동료, 제자와 이웃을 떠나는 것 역시 마음이 아팠다. 동시에 새로운 환경과 도시에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걱정과 현실, 두려움을 뒤로하고, 진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뒤틀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일 똑같은 삶에서 삶을 뒤틀어 일생일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험을 감행했을 때 진 할머니는 완전 새로운 삶, 자기 자신으로 충만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는 등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이 책은 전합니다.

긴 이야기이지만, 이 책의 한 부분을 설교 시간을 통해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2026년 표어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 할머니의 이 무모해 보이는 가출은 60년간 틈 하나 없이 빽빽하게 짜여있던 ‘완고한 삶의 벽’에 스스로 균열을 낸 사건이었습니다. 그 틈이 생기자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자기 자신과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2026년을 맞이하며 내건 표어는 ‘생명의 틈이 되는 교회’입니다. 이선옥 작가님의 <틈만 나면>에 나오는 그림처럼, 딱딱한 보도블록 사이의 좁은 틈에서 초록빛 생명이 올라올 수 있게 하는 것, 내 삶과 존재에 틈을 벌려 그 틈으로 누군가가 와서 쉬고, 먹고, 회복해서 자신만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표어의 의미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초록빛 생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초록빛 생명이 자라날 수 있도록 틈이 되어주는 교회입니다. 절망과 좌절에서 희망으로, 불안과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의 ‘생명의 틈’이 되어주는 교회입니다.

뭔가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은 들지만, 오늘 우리 사회와 우리는 사실 삶에 이런 빈틈이 생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빈틈은 완벽하지 않은 미완성이고, 허술함으로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빈틈은 메꾸어야 할 부족함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아 합니다.

다른 이미지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신경섭 건축 사진작가님이 찍은 한 주택단지의 사진입니다. 벽돌 하나하나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런 사진처럼 빈틈 하나 없는 살고 싶어 합니다. 빈틈이라도 생기면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때로는 내 삶이든, 내 자녀의 삶이든, 내 이웃의 삶이든 몰아붙이곤 합니다. 그런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성도님들께,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가 되는 틈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세상이 원하지 않는 이런 빈틈을 통해서 비로소 생명이 자라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틈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앞서 책의 진 할머니처럼 40년이란 결혼생활, 60년이라는 삶에서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안정감을 뿌리치고 수백 번, 수천 번을 망설이게 되기는 하지만 두려움, 아쉬움, 걱정을 넘어 삶과 존재를 비트는 결단이 있을 때, 틈은 만들어지게 됩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성도가 어떻게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전체의 내용은 고넬료와 베드로가 각각 환상을 보고 그 환상에서 주어진 지시에 따라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넬료가 먼저 환상을 보고 그 뒤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베드로가 환상을 보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고넬료는 누구입니까?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인이자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임에도 고넬료는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었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신실한 고넬료이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이방인 고넬료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의식 그리고 구약 말씀에서부터 비롯된 순수혈통 강조가 이런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에스라 9:2-3 “2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또는 며느리로 맞아들였으므로, 주변의 여러 족속의 피가 거룩한 핏줄에 섞여 갑니다. 지도자와 관리라는 자들이 오히려 이러한 일에 앞장을 섭니다.” 3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았다.”

에스라 9:14 “14 그러므로 다시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아야 하였습니다. 역겨운 일을 저지르는 이방 백성들과 결혼도 하지 않아야 하였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분노하셔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리신다고 해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뚜렷하기에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책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이오”(사도행전 11:3)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음식조차 같이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상종할 수 없는 이방인과 만나고 식사를 한 베드로에게 유대인들은 당신은 경건하지 못한 사람이오! 율법을 어긴 사람이오! 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베드로도 이런 비난하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이라는 견고한 벽 안에서, 그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상종, 식사 친교 등을 하지 않는 매우 완고한 민족주의자요, 보수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신앙적으로 완벽한 성벽을 쌓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는 그 벽 너머에 있는 ‘상종 못 할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 한 고백입니다. “28a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베드로의 그 완고하고 단단한 벽에 ‘틈’을 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이렇습니다.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것은 큰 보자기 같았고, 그 안에 ‘땅에 있는 각 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어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보이는 것들을 잡아먹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명령을 단번에 거부합니다. 율법에 금지된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먹지 않겠다고 단언합니다.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깨닫고 받아들여야 할 핵심 명제가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를 통해 선포됩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선포에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 배타주의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환상 속의 장면들과 소리를 더 듣고 봅니다.

“15 그랬더니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뒤에,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다.” 세 번의 반복으로 하나님의 뜻이 그만큼 확고함을 밝히고, 환상의 주제를 분명하게 이해해서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의아함을 풀 사이도 없이 바로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번엔 성령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일어나서 내려가거라.”

처음에는 “28a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라고 말했던 베드로였으나,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자신의 완고함을 비틀어 틈을 만들고자 결단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8b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 다거나 부정하다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29 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반대하지 않고 왔습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의 완고함에 틈을 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스스로 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단 가본 것’, 이 행동이 중요합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깨닫습니다.

첫째, 용기를 가지고 나의 완고함을 깨야 합니다. 베드로의 “결코 그럴 수 없다.”라는 고백은 오늘날 우리의 “나는 원래 이래”, “이건 상식에 어긋나”라는 편견과 닮아있습니다. 이 완고한 삶의 루틴에 균열을 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 틈이야말로 하나님의 역사가 또 은혜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둘째, 성령이 일하실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계획과 신념으로 꽉 차 있는 삶에는 성령께서 머무실 공간이 없습니다. 내가 조금 비워내고, 조금 비틀어 만든 그 작은 틈이 결국 성령께서 타인에게로 건너가시는 통로가 되고, 예상치 못한 만남(고넬료)을 선물로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셋째, 숨 쉬는 공간, 생명의 웅덩이라는 시간을 내야 합니다. 거창한 댐이 아니라, 메마른 땅에 난 작은 틈에 고인 물이 목마른 생명을 살리듯, 성도님들의 깨어진 틈이 누군가에게는 안식처가 되고 살아날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간과 시간의 틈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신앙적으로 완벽한 성벽을 쌓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이라는 견고한 벽 안에서, 그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는 그 벽 너머에 있는 ‘상종 못 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베드로의 그 단단한 벽에 ‘틈’을 내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그렇게 베드로는 자신의 완고함에 틈을 내어,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냈고, 이방인을 찾아가 보는 공간과 시간의 틈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나의 삶을 비틀 때, 빈틈이 생깁니다. 그 빈틈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만남과 사건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을 살리는 은혜가 시작됩니다.

우리도 어딘가로 가고 싶고, 하고 싶지만, 평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왜입니까? 우리 생각의 완고함, 조건, 객관적인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 염려 등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어 나의 완고함을 깨는 일, 성령이 일하실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드는 일, 다른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숨 쉬는 공간, 생명의 웅덩이라는 시간을 만드는 일이 2026년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생명의 틈은 작은 발걸음, 사소한 발걸음인 것 같지만 결코, 작거나 사소하지 않습니다. 그 틈을 통해 어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틈을 내기 위해 오늘부터 소모임인 복음 대화가 진행됩니다. 앞으로 소모임의 이름은 ‘복음 대화’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 대화의 질문은 쉽습니다. 설교를 듣고 떠오른, 느낀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리고 그 단어가 떠오른 이유는? 이 질문을 생각해 보고 나누면 됩니다.

대화를 나눈 이후에는 질문을 써보는 겁니다. 아무 질문이나 상관없습니다.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질문을 포스트잇에 써서 다같이 질문을 붙여보고 보는 것으로 복음 대화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소모임인 ‘복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고, 말씀을 더 깊이 느끼며 단 시간에 될 수 없지만, 틈을 내어 누군가의 생명이 피어날 수 있는 빈틈을 만들어 내는 성도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낸 사이로 들어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