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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중 목사] 서로 사랑합시다 – 2025년 4월 6일

요한1서 3:11-19, 시편 31:9-16, 요한복음 13:31-35, 신명기 6:10-15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나를 둘러싼 외부의 상황 변화로 인한 일시적인 평안이 아닌, 우리 안, 내면에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완전한 평안을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황은영 목사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매 순간의 선택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진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나의 힘을 확인하고, 이런 힘에 도취 된 선택’을 하거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김으로, 겸손하게 주신 역할을 감당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성도가 끊임없이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심을 어떻게 삶으로 드러내며 살 수 있을까?, 또 삶으로 드러내기 위해 나는 어떤 결단을 해야 할까?’에 관해 고민하고 기도할 때 가능해집니다.

지난 한 주간 저와 성도님들은 어떤 고민과 기도를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하며 살다가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한 주간 저와 성도님들의 삶이 하나님의 책에 부끄럽지 않게 기록되어 졌기를 바랍니다.

헌재의 대통령 파면 선고 전날인 지난 목요일, 안국역에서 시작해 광화문까지 이어진 시민 10만 명이 참여한 집회에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참여했습니다. 이 집회에서 수많은 시민이 바라보고 있는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졸이 자신의 최종 학력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사회의 소수자로서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말씀하시며 학력, 학벌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교육 노동자라고 소개한 전교조의 한 선생님은 우리의 일상 자체가 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에, 교육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권을 제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교육 노동자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성소수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탄핵 후 달라질 세상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발언하는 분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건 이분들의 발언을 듣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10만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이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민이, 단상에 올라 발언한 분들의 내용에 동의하고 응원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이제 이런 생각을 보편적으로 여기는 세상,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상식이 된 세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오늘날 많은 교회는 집회에서 시민들이 발언한 내용이나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점점 더 보수화되고 극우화되며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금보다 앞선 과거 시대에서는 교회가 인권을 비롯한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발걸음에 적어도 뒤처지지 않았고, 어떤 시대에는 오히려 앞서 나가기도 했음을 생각할 때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교회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낡은 교리를 지키고자,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정신을 잃어버리거나 훼손하고 있습니다. 마치 신약 성서에 나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일에 중요하게 작용했던 율법, 즉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율법이 아닌 자신들이 만들어낸 율법을 지키고자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모습과 같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아닌 세상이 오히려 성경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보여주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랑의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은 다른 나라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이스라엘만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나, 약자를 더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 등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 특별히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를 만드는 법입니다.

특히 문대골 목사님이 이번 담임목사 취임식에 오셔서 말씀하신 희년법의 경우 다른 고대 근동의 나라들보다 훨씬 급진적인 법이기도 합니다. 이런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다른 나라들과 차별되는 더 정의로운 나라, 급진적인 나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6:10-15의 말씀을 보면, “1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당신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에, 당신들을 이끌어들이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당신들이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11 당신들이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당신들이 파지 않았지만 이미 파놓은 우물이 있고, 당신들이 심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당신들은 거기에서 마음껏 먹게 될 것입니다. 12 당신들이 그렇게 될 때에, 당신들은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3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십시오. 14 당신들은, 당신들 가까이에 있는 백성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에,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15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분노하시면, 당신들을 땅 위에서 멸하실 것입니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를 섬겨라,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라.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들은 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법을 신성하게 보았고, 법을 지키는 것이 곧 신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신명기에 나오는 ‘다른 신을 따라간다.’라는 말씀은 단순히 우상에 절하고 믿는 것을 넘어 그 나라에 주어진 법을 지키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다른 나라의 법을 따르지 말고, 자신이 가르쳐준 율법을 통해 어떤 나라도 만들지 못했던 정의롭고 급진적인 나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나라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정신이 담겨있는 하나님이 주신 법을 따르는 삶이 바로 사랑하는 삶이라고 성서는 이야기합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율법의 내용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레위기 19:18b)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레위기 19:9-10a)거나

도둑질하지 마라. 사기치지 마라. 이웃을 속이지 마라. 이웃을 억누르거나 빼앗지 마라. 눈이 먼 사람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지 마라.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하지 마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남을 헐뜯는 말을 퍼트리지 마라. 이웃이 잘못하면 반드시 그를 타일러라 등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말씀 후에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레위기에 약자와 이웃을 대하는 실제적인 방법, 삶의 태도를 통해 어떻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랑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인, ‘서로를 보호하고 책임져 주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급진적이고 진보한 법과 사랑의 방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서로를 향한 보호와 책임의 삶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34-35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사랑은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요한1서 3:11-19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우리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14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의로운 일을 하는 이들은 세상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기록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핍박받게 된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런 미움과 핍박이 두려워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면, 죽음에 머문 사람이라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된 일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분노와 미움과 증오로 이 일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의 마음으로 이 일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사랑의 삶을 사는데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되겠구나. 이제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들었습니다.

성도님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오늘 본문이 이야기한, ‘죽음에 머문 상태’여야 합니다. 나의 자리를 잃을까, 인정받지 못할까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못해 죽음에 머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사랑하라고 이야기합니까?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18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1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사랑의 모습 그리고 제자 사도 요한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 사랑의 모습은 구약에서도 표현된 ‘서로를 보호하고 책임져 주는 삶’입니다.

더 풀어서 말하면, 다른 나라와 구별되게 더 정의롭고, 급진적인 모습으로서의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예수님도 요구하셨고, 제자 공동체를 통해 이런 사랑의 모습, 삶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동, 이런 사랑의 삶을 통해 성도는 진리를 경험하게 되고,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통해 죽음이 아닌 생명에 거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모습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 공동체를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급진적인 삶은 사실 유별납니다. 비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소수자로 살 것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은 기득권자의 시선에서는 자신의 체제에 도전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자들의 반대 그리고 이들에게 부역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디 칠 수밖에 없습니다.

낡은 것을 허물고, 체제를 전복하는 사랑의 삶은 끊임없이 반대에 부디 치고, 조롱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언제나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 실천하며 사는 이들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였습니다. 저는 저와 성도님들이, 우리 생명사랑 공동체가 이런 소수자를 자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소수자를 자처하는 우리에게 오늘 시편 본문의 말씀이 위로와 힘을 줄 것입니다. 시편 31:9-16 “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14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시편 기자와 같이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마땅히 성도가 살아야 할 사랑의 삶, 소수자의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담임목사 취임식에서 말씀드린 이상중 목사의 취임사는 일종의 출정식과 같습니다. 지난 주일 취임식에 참여하지 못해 혹시나 듣지 못하신 성도님들이 계실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로서 또 생명사랑교회 담임목사로서 차별받는 성소수자 및 이 땅의 소수자들과 연대하며 함께 목소리를 내고, 불의한 기득권 세력에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여 잃어버린 권리를 회복하는 일에 생명사랑 성도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훼손 되어버린 성경의 말씀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르게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여 이미 이 땅에 온 하나님 나라 그리고 장차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준비하는 교회 될 수 있도록 오늘 참여하신 모든 분이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일을 위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더 정의롭고 급진적인 서로 사랑하는 삶, 서로의 삶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생명사랑 공동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