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중 목사] 우리가 먹어야 할 빵 – 2025년 10월 5일 
요한복음 6:48-59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성도가 누릴 수 있는 큰 축복 중의 하나가 ‘마음의 평안’이라는 말씀은 많이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평안’을 얻기 위해 좋은 경치를 보려고 먼 길을 떠나거나, 잠시나마 만족감을 주는 값비싼 물건을 구매하는 등의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경치를 보는 장소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한 직후에도 평안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감사하게도 평안을 얻기 위해 마음만 돌리면 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면 성도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미 우리 안에 평안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과 내 삶을 인도하심을 기억할 때, 자연스럽게 평안을 흩었던 불안의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 둘째가 저와 아내에게 가끔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도 했던 질문이긴 한데 나이가 들면서 하지 않더라구요. 둘째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 집에 돈 없어?” 부자는 아니지만 쓸 만큼 충분히 있다고 알려주면 안심합니다.
자신이 돈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자신이 안심할 만큼 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부모 되시는 하나님이 나와 늘 함께 계심을 알고,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끌어가고 계심을 안다면 성도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언제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성도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늘 내가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기억하며, 평안을 구하고 누리는 성도로 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한가위 감사주일로 드립니다. 이 ‘추석’이 감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을 우리는 많이 들어봤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조선 순조 때 김매순이라는 사람이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열양세시기’ 8월 중추(中秋)-음력-편을 보면,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었다. 이 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夜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고, 일 년 중 가장 먹을 것이 풍성한 계절입니다. 그렇기에 가윗날 곧 추석은 우리나라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의 하나이고, 가윗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았으면 하는 의미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에 담겨 있습니다.
추석이라는 기독교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민속의 명절을 기독교에서 감사 예배로 드리는 이유는 이런 결실, 풍성함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나누며 한가위 감사주일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류형선님이 작사작곡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살떡 다섯개’ 노래 아시나요? ‘맛있는 밥을 서로 먹여 주면서, 더러운 발을 씻어 주면서, 고등어 두 마리와 찹살떡 다섯 개로 우린 오천 명도 무지무지 배부를 수 있단다.’
이 찬양,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성경 본문은 요한복음 6:1-15입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14절)
이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은 이런 기적을 베푼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15절)
사람들의 이런 기대와 욕망에서 벗어나시고자 예수님은 사람들을 떠나 바다를 건너 다른 곳으로 이동하셨습니다. 하지만 끝내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이런 요구를 했습니다. “주님, 그 빵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빵을 요구한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예수님에게 빵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불안’ 소유하지 못함으로 인한 ‘불안’ 때문에 예수님에게 빵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도 이 ‘불안’을 해결하고 싶어서 늘 이방인이나 구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리고 이 ‘불안’이야말로 신앙의 큰 걸림돌입니다.
‘불안’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판단과 결정을 합니다. ‘불안’ 때문에 조급하고 초조해합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믿음 없음이 아니라 불안이고 두려움입니다.
마태복음 6:31-32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하지만 늘 소유해야 하고, 쌓아 두어야만 불안하지 않기에 오늘날의 성도도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헛된 것들을 열심히 구합니다. 이 헛된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불안’ 때문입니다.
그래서 빵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안’을 해결하여주길 원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오늘 본문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48절) 예수님은 부연 설명으로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49-50절)
너희들이 원하는 빵, 그 빵을 광야에서 너희들의 조상에게 주었지만, 그 빵은 먹어도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나, 예수를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님은 임시방편의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빵은 단순히 배고플 때 먹는 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평안해질 거야.”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먹는 빵을 위해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말씀을 위해 살라고 요청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빵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빵은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평안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근원적인 ‘불안’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노예로 사는 삶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살려달라는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10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재앙의 이름 1) 물이 피가 되다 2) 개구리 소동 3) 모기 소동 4) 등에(말파리) 소동 5) 가축병 6) 종기(피부병) 7) 우박 8) 메뚜기 소동 9) 어둠 10) 이집트 맞아들과 맞배의 죽음
9가지 재앙을 내린 이후 마지막 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 문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라. 그러면 재앙이 너희를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냥 한 번에 꺼내주시면 안 되나요? 왜 열 가지 재앙,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어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고, 애굽 사람들에게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열 가지 재앙, 즉 반복되는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무엇을요? ‘하나님을 의지하라.’ 또한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 역시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애굽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노예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이 세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한 게 아니었어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질문] “얘들아, 우리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똑같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 아이들: “하나님이요!”) 맞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최고가 되어서 사랑하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항상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친구들, 혹시 이런 걱정 해본 적 있나요? “시험 망치면 어떡하지?”, “친구가 나랑 안 놀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
사람들이 예수님께 “빵 주세요!”라고 했던 것도 사실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불안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죠?. “내일 먹을게 없으면 어떡하지? 미리 쌓아둬야지!”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빵이 아니라 나야. 내가 생명의 빵이야.”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해요. “하나님, 제가 시험을 잘 보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 제가 시험을 볼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결과와 상관없이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질문] “1등을 하지 못해도, 친구가 나랑 안 놀아줘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괜찮을까요?” (→ 아이들: “네!”) 그렇죠!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셔서 불안을 평안으로 바꿔 주시는 분이에요.
이번 추석에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겠죠? 송편도, 고기도, 잡채 등등.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진짜 감사할 것은 음식보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불안을 평안으로 바꿔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