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중 목사] 이런 일들을 기억하여 두어라. – 2026년 01월 25일
이사야서 43장 18-21절, 44장 21-23절, 마태복음서 9장 9-13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매 주일 질문드리지만, 성도의 평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도가 평안하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근심에 쌓여 있을 때 삶과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불안과 두려움이 동기가 될 때 헛된 것을 구하거나,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인 잘못된 방향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아닌 나의 나라를 구축하기 위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다시 평안의 마음으로, 평안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평안 누리기를 바란다는 용의(用意)를 내기만 하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평안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평안하십시오. 평안을 통해 하나님께 조율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성도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기 공동의회를 앞두고 교회력에 따라 주어진 이사야 본문과 마태복음 본문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이 공동의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또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43, 44장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 상황입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탔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삶 자체도 힘들었지만, 정체성의 문제도 자신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인가?”,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시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돌아갈 수는 있는가?”, “돌아가도, 예전처럼 살 수는 있는가?” 이런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관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여기서 하나님이 기억하지 말고,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나간 일, 옛일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상황, 비참한 삶의 상황에서 매일 과거를 회상했을지 모릅니다. “왕년에는 우리에게 다윗 왕조의 영광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는데”와 같은 과거의 영광과 과거의 기적을 추억하며 현실의 비참함을 견디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옛 영광, 예전 하나님이 일하신 방식을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과거에 갇혀 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영광, 과거의 방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오면서 익히게 된 노예의 삶, 노예의 근성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치 출애굽을 하며 광야 생활을 통해 노예 삶에 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것처럼 그 노예의 삶, 근성을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그런 영광도, 그런 하나님의 방식도, 그런 노예 삶과 근성도 더 이상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19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이상 과거의 영광, 방식, 실패의 습관을 잊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기억은 이스라엘 백성을 틀 안에 가두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가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즉,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뇨,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뇨.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오히려 비웃음 들을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8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19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20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움직이고 계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고 계십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상력 부재와 이들의 옛 영광에 대한 기억과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여전히 푸념과 절망 속에 있게 할 뿐입니다. 이런 기억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새 일을 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발견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근심하며 살아가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새 길을 만들고 계시는데, 광야에 물을 대고,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사막에 강을 만들고 계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니 오늘 우리 역시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나의 경험에서 오는 방식, 지식, 옛 영광, 혹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던 방식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성도는 옛 방식을 버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희망적인 말씀을 이 본문 끝에 전하십니다. “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나를 찬양하는 백성이 될 것이다. 이 말씀에 여전히 우리는 옛 영광에 사로잡혀 있고, 옛 방식과 노예근성을 버리고 있지 못하지만,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도 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44:21-2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 “야곱아, 이런 일들을 기억하여 두어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종이다. 내가 너를 지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지금까지 ‘잊어라!, 기억하지 말아라!’라고 하신 하나님이 ‘이것만은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내가 너를 지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22절과 23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께서 야곱을 구원하심으로써,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써, 영광을 나타내셨다.”
구원의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오늘 두 구절을 통해 완료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구원하였다.’, ‘나타내셨다.’ 앞서 이사야 43장에서 “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와 같은 형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결국 우리는 하나님 구원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는 세리와 죄인, 바리새파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자신들의 완고한 교리와 율법과 지식과 경험 때문에 예수님이라는 구원이 이미 그들에게 임했고, 바로 곁에 계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리였던 마태를 비롯해 죄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았고, 예수님과 어울렸고, 자신을 이루어왔던 혹은 유일한 방식이라고 여겼던 삶의 방식을 기꺼이 벗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12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앉아 있지만, 사실 전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내가 옳고, 내 가치관이 옳고, 내 방식이 옳고, 내 생각이 옳고, 내 경험이 옳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려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광야에 길을 내시고, 광야에 물을 내시고, 사막에 물을 내시고 계시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있고, 그것이 옳아서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 저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입술로는 “저는 연약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입술을 제외한 온 몸과 마음과 삶으로는 “저는 하나님으로 인해 바뀔 것도 하나 없고, 언제나 제 방식과 삶이 옳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습니까?
성도에게 필요한 건, 무엇을 함이 아니라 이런 우리의 기억, 고정관념, 생각과의 끊임없는 분투입니다. 사실 어떻게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쉽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종이고,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어진 존재이고, 하나님이 결코 나를 잊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이 쉽습니까?
그래서 성도에게는 분투가 필요합니다.
주중에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람과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도 기근이라는 ‘광야’를 만났을 때,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집트로 도망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고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아내를 뺏길 위기에 처하게 만든, 참으로 비겁한 모습입니다.
심지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을 때, 자신이 얻게 될 이익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목숨도 부지하고, 자신을 잘 대해 주리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믿음의 조상, 축복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아브람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고 사래를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오히려 많은 재물을 이끌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훌륭해서 길이 열린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실패했습니다. 그는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셨기에, 그 실패의 자리에서조차 길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때로 문제 앞에서 비겁해지기도 하고, 믿음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보다 크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잊으라는 것은 단순히 과거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과거의 방식에 가두는 기억, 그리고 우리 몸에 배어버린 포로의 습관을 잊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이것을 기억하여 두어라… 내가 너를 지었다… 내가 너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나를 누구로 지으셨는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분투는 마음을 쥐어짜는 투쟁이 아닙니다. 평안을 지키기 위해, 옛 기준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멈추는 훈련입니다. “나는 괜찮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충분하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라고 다시 고백하는 훈련입니다.
공동의회를 앞둔 지금, 하나님은 우리 교회 앞에도 새 길을 내고 계십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수치에 기대어 옛 영광을 만들거나, ‘우리 방식이 맞았다.’라고 고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결단합시다. 하나님을 가두는 옛 방식은 잊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정체성은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광야에 내시는 새 길을 알아보도록 마음을 열겠습니다.
부족한 아브람조차 하나님이 약속을 기억하셔서 길을 내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를 잊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평안하십시오. 그 평안 속에서 하나님께 조율되십시오. 그리고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우리 공동체가 광야에 열린 길 위를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