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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중 목사]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 2026년 09월 06일

이사야서 24장 1-6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가 평안하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평안하지 못합니까?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들, 미래에 대한 불안, 덜 소유했다는 불안,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실현되지 못한 욕망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평안이란 어쩌면 허상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이런 문제, 불안, 두려움은 해결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세상은 이런 불안, 문제, 두려움을 동력 삼아 유지되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개발, 소유, 전쟁 등이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세상이 말하는 평안, 평화는 거짓 구호에 불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안을 결코 누릴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은,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니죠, 더 놀랍게도 평안이 이미 우리 안에 주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세상이 얻고, 추구하고자 하는 평안의 모습과 방향이 다릅니다. 세상은 힘, 소유, 통제로 평안을 누리고자 하지만 그래서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주신 평안은 하나님으로 인한 평안 즉, 믿음으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언제 어디에서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근심, 불안,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 주어진 평안을 날마다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성령강림절이 끝나고 창조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창조절은 우리 교단이 지키는 독특한 절기입니다. 개신교의 다른 많은 교단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12월의 대림절을 신앙의 새해 첫날로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따라가는 달력을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가는 전통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단은 ‘성자 예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성부 하나님’,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삶을 이끄시는 ‘성령 하나님’까지 포함된 ‘삼위일체력’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은 12월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9월 첫 주일을 신앙의 새해 첫날로 삼고 이 긴 가을의 시간 동안 창조의 신비를 먼저 묵상합니다.

이는 기후 위기와 피조 세계의 파괴를 넘어선 생태계의 붕괴, 그로 인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피해를 보아야 하는 약자들. 그리고 이 약자들이 겪어야 하는 구조적 불의의 현실을 보며, 온 우주 만물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여 ‘파괴된 생명을 살리고 회복하는 일’을 하겠다는 교단의 신학적 결단에서 비롯된 절기입니다.

이런 창조절을 맞아 우리도 파괴를 넘어 붕괴하는 이 창조 세상, 구조적 불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결단할 수 있는 절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창세기 3장 17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진 아담에게 하나님이 하신 선언,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입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표현이지만, 이제는 이 표현조차 충격적이거나 강력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지?”라고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이 표현이 어떠한 설명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게 더 참담하기는 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그 결과는 단지 인간 개인의 타락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불순종은 생명의 터전인 자연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비극적인 인간과 땅, 인간과 자연이라는 연결고리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납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하나님은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창세기 4: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그저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무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불의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증언하는 살아있는 피조물이자 인간의 폭력과 불의 때문에 함께 고통을 겪어야 하는 피조물임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결국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창세기 4:11-12a)라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자신뿐 아니라, 피조 세계의 생명력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이러한 인간과 자연의 연결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더러워지고 그 주민을 토해낸다.”(레위기 18:25)라고 경고했고, 아모스 선지자는 인간의 불의로 “목자의 초장이 시들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른다.”(아모스 1:2)라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 역시 인간의 죄로 인해,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호세아 4:3)라고 선포했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서 8:22)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셨을 때, 그 구원의 대상은 인간만이 아니라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임을 말해주는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24장의 본문도 바로 이러한 사실과 관계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불의함이 어떻게 땅을 끔찍한 저주로 몰아넣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땅이 슬퍼하고 쇠약해지며 세상이 쇠잔해지는 환상을 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사야 24장 5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땅이 사람 때문에 더럽혀진다. 사람이 율법을 어기고 법령을 거슬러서,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 언약의 파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약자를 짓밟고,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이웃과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며, 하나님이 정해주신 생명의 한계를 무시하고 무한한 소유를 탐했던 ‘인간의 교만과 구조적 불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과 연약한 자들을 향한 폭력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그들이 발 딛고 사는 땅 자체를 오염시키고 병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종교 지도자와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부와 힘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그들이 일군 불의한 구조는 결국 생명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저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의 묘사는 수천 년 전 과거의 일만이 아닙니다. 이윤과 편리를 위해 무참히 피조 세계를 파괴하고 착취하는 오늘의 모습이자, 이 기후 재난의 피해를 가장 약한 이웃들이 겪어야 하는 오늘의 모습이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2023년에 발생한 리비아 대홍수를 기억하십니까? 대홍수로 인구의 20%인 2만 명 가까운 생명이 죽었습니다. 이 끔찍한 참사는 단순한 폭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권력과 석유를 향한 탐욕, 끝없는 파벌 전쟁 속에서 댐의 보수는 철저히 방치되었고, 수많은 경고를 무시한 인간의 오만이 만들어낸 완벽한 인재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는 네팔의 참혹한 대홍수를 목격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의 빙하가 무서운 속도로 녹아내리며 산맥 곳곳이 붕괴 위험을 안은 거대한 시한폭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실은 빙하가 무너져 내리고 언제 땅이 갈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자리에, 인간은 ‘청정에너지’와 ‘녹색’이라는 이름표를 붙여가며 끊임없이 댐과 수력발전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은행과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부끄럽게도 우리 한국의 기업들마저 이 개발 광풍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빙하가 무너지는데, 아래에서는 끝없는 경제 성장을 위해 자연의 숨통을 틀어막는 이 어리석음의 대가는 누가 치르고 있습니까? 바로 수백 년 동안 강과 자연을 통해 살아왔던 네팔의 민중들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성장주의와 탐욕이 연약한 이웃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급기야 창조 세계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탄식 그대로, 땅이 그 주민의 탐욕과 불의 때문에 철저히 더럽혀졌고, ‘영원한 언약’이 깨어진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무한한 성장을 도모하며 뿜어내는 독, 그 독으로 평화를 이루고,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허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특별히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요즘 기후 위기가 심각하니 당연히 탄소 배출을 줄이고 생태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적인 외침을 자주 듣게 됩니다. 물론 그런 실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첫걸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창조 세계의 파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땅이 더럽혀진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율법을 어기고 법령을 거슬러서,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교만과 죄, 하나님과 틀어진 관계가 근본 원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파괴된 창조 세계를 억지로 고치려 들기 전에, 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회복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마음을 내주었던 삶,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 했던 교만, 하나님이 아닌 욕망을 좇았던 삶을 대면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탐욕을 좇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으로 삶을 재조정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구를 지켜야만 해!”, “무엇 무엇을 해야 해!”라는 의무감으로 억지로 실천을 쥐어짜 내는 것은 또 다른 율법주의이자 피곤한 짐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할 때, 우리의 내면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내 안이 채워지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생명을 살리고 창조 세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언 4:23)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 교회와 이름이 비슷한 ‘아름다운 생명사랑 공동체’의 김영진 목사님을 주중에 만나 뵙고 왔습니다. 기후위기걷기 운동에 함께하고 있고, 우리 교회에도 방문하셨던 목사님이십니다.

강북구 수유동에 거대한 한옥촌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서울시에서 한옥마을 조성을 위해 6곳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한 곳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옥촌이 들어설 수유동 지역은 선정 이유와 맞지 않았습니다.

낙후된 마을을 수리해서 한옥마을을 만든다는 취지인데, 수유동에 선정된 부지는 한옥 45채가 들어오려면 이미 조성된 공원과 숲 자체를 밀어버려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뒤부터 김영진 목사님은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에도 나무들이 나와서 고통을 호소하고, 숲으로 산책을 하면 나무들이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말을 걸어와서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뿐 아니라 지역사회 활동가, 서울시 환경운동연합 등 많은 분을 만나 이 일을 상의하고 대책을 강구 중이셨고 이런 과정에서 저와 몇 분의 목사님, 신부님을 연대인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활동과 이야기에 억지스러움은 단 한 가지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목사님 안의 생명력이 흘러 자연스럽게 그 일들을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과 연약한 피조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당위가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이 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창조절에 ‘무엇을 해야만 한다.’라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마음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어, 억지스러운 실천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명을 살려내는, 우리 삶에 틈을 내어 사람과 자연이 쉬고 회복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