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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중 목사] 잇는 자 – 2026년 05월 10일

신명기서 34장 1-8절, 사도행전 1장 1-11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상황이나 조건이 아닌, 나의 안에, 나의 곁에,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평안을 누리셨던 한 주간이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보통 어버이주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수고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어버이날이나 어버이주일이 어떤 분들에게는 감사한 날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일이 감사보다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고,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는 말 자체가 오래된 깊은 상처를 떠올리게 만드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자녀와의 갈등으로 인해 어버이날이나 어버이주일이 슬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어버이주일을 세상의 어버이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념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의 어버이주일은 단순히 “부모님께 감사합시다.”, “부모님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날에서 멈추지 않고 신앙 안에서 다시 해석되어 기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 명랑대화 시간에 “내 인생의 한 마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내 마음에 오래 남은 말, 나를 붙들어 준 말,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시간에 최영 집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의 허락을 받고 오늘 성도님들과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집사님이 초등학교 시절 경험한 일입니다. 아이스크림이나 간식이 먹고 싶을 때면, 아버지 양복 윗도리 주머니에 늘 동전이 들어 있어서 종종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몰래 꺼내어 간식을 사 먹곤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사님이 방에 자는 듯이 누워 있었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마루에서 이야기 나누시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집사님이 듣고 있는 줄 모르고 계셨습니다.

동전이 사라진 상황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계셨고, 어머니는 정황상 넷째가 범인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넷째는 아니야. 나는 넷째를 믿어.” 그리곤 아버지가 자신이 잃어버렸나 보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어린 최영 집사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은 오히려 양심이 더 크게 찔렸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믿어.”라는 믿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한마디가 어린 마음에 깊이 남았고, 나를 믿어 준 아버지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때부터 누구보다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아니야, 나는 너를 믿어.” 이 말이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한 마디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사실 정황만 보면 의심할 만했습니다. 아버지의 판단이 현실적으로 정확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나는 넷째를 믿어.” 이, 한 마디는 자녀 안에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불러낸 말이었습니다. 신뢰가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와 사도행전 두 본문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과 신뢰를 받을 때, 삶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두 본문은 바로 이런 사랑과 신뢰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람에게 사랑과 신뢰를 보내고 계십니다. 모세도 이 사랑과 신뢰를 받았고, 또 주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신뢰를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과 신뢰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 갈 수 있게, 이어서 살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은 ‘잇는 자’입니다. 어버이는 ‘잇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이어받았고, 무엇을 이어 후손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하겠습니까? 사랑과 신뢰입니다. 오늘 모세와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신명기 34장에서 모세가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오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보여 주십니다.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 서해까지 이르는 온 유다 땅,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에서 소알까지. 하나님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차지할 모든 땅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이 장면은 모세 한 사람의 마지막 장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이어 오신 언약의 역사를 모세 앞에 펼쳐 보이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1)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세겜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창세기 12:7)

이 약속은 이삭에게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로 가지 말아라. 내가 너에게 살라고 한 이 땅에서 살아라. 네가 이 땅에서 살아야,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약속을 이루어서,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그들에게 이 땅을 다 주겠다.”(창세기 26:2b-4a)

이 약속은 야곱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던 길, 베델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잘 때 하나님은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기 28:13-15)

이 언약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이어 가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음의 삶이 그 누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이 세 사람은 흠이 많고, 믿을 만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흔들렸고, 이삭은 두려움 속에 살았고, 야곱은 속이고 도망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습니까? 광야에서 수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약속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사랑을 보내 주셨습니다. 계속 신뢰를 보내 주셨습니다. 계속 다시 부르셨고, 다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너희가 완벽해서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 아니다.”, “너희가 믿을 만해서 내가 너희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를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언약은 사람의 완벽함 위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질 뿐입니다. 언약은 사람이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한 사람을 다시 믿음의 자리로 불러 주셨기 때문에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랑과 신뢰가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으로, 이삭에게서 야곱으로, 야곱에게서 이스라엘로, 그리고 모세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신뢰로 언약을 이어 가셨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본문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묻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사도행전 1:6)

이 질문 안에는 제자들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사십 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전히 묻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제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자신들이 생각하는 구원과 회복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너희는 아직도 모르느냐?”, “내가 사십 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말했는데, 아직도 그 질문이냐?”, “너희에게 어떻게 내 일을 맡기겠느냐?”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처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어긋난 질문을 꾸짖어 끝내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시선을 다시 환기해 주셨습니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리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흐름이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십니다. 아직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제자들에게 증인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왜입니까? 제자들이 믿을 만한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특출난 사람들이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제자들이 이미 충분히 성숙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변화될 제자들의 미래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지금의 어리석음으로만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지금의 실패와 한계 안에 가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럼에도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뢰하셨습니다. “너희는 지금은 모르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지금은 좁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가게 될 것이다.”, “너희는 지금은 약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의 신뢰입니다.

오늘 두 본문과 최영 집사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함께 들려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사랑과 신뢰의 태도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언약은 이어졌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랑과 신뢰를 보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세 없이도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실패한 제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사랑과 신뢰가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이런 사랑과 신뢰를 받은 우리는 오늘 어버이주일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말을 이어 말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시선을 이어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어떤 믿음을 이어 주고 있는가? 자녀에게, 다음 세대에게, 교회 안의 누군가에게,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나는 무엇을 보내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판단입니까? 정죄입니까? 비교입니까? 아니면 사랑입니까? 신뢰입니까?

‘잇는 자’는 사랑과 신뢰를 이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당장 믿을 만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내가 경험한,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사랑과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믿음의 자리로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이어 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흘러온 사랑과 신뢰를 다음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어버이주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혼자의 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이어준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고, 누군가의 신뢰가 있었고, 누군가의 기도가 있었고, 누군가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주일은 감사의 날일 뿐 아니라, 다짐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과 신뢰를 이어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나도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을,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의심이 아니라 신뢰를 이어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많은 것을 남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재산을 많이 남기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과 신뢰, 믿음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잇는 자’의 삶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고, 증인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부모의 “아니야, 나는 너를 믿어”라는 한마디가 자녀의 마음 안에서 정직으로 자라났고, 삶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이어 주겠습니까? 상처를 이어 주겠습니까? 두려움을 이어 주겠습니까? 의심과 비교와 낙인을 이어 주겠습니까? 아니면 사랑을 이어 주겠습니까? 신뢰를 이어 주겠습니까?

우리의 말이 누군가를 살리는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누군가를 다시 일으키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랑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향한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가 우리 가정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그리고 다음 세대 가운데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