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중 목사] 우리가 빛 가운데로 살아가도록 – 2026년 10월 04일
이사야서 55장 1-5절, 요한1서 1장 1-7절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만큼 믿는다면, 성도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외부가 아니라 이미 내면에 존재하는 평안을 다시 선택하여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세계성만찬주일입니다. 10월 첫 주일이면 전 세계의 많은 교회가 교단을 초월해서 동시에 성찬식을 진행합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교회가 지금, 이 시간에 성찬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10월 첫 주일을 세계성만찬주일로 지킨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이 주일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다가, 대체 어떤 연유로 제정이 되었는지, 어떤 의미로 지키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한 마음이 들어서 주변 목사님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명의 목사님이 아니라 여러 명의 목사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흥미로웠습니다. 세계성만찬주일로 지키는 교회든, 지키지 않는 교회든 이 주일의 의미를 아는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 아무도 모르네. 그럼 내가 알아봐야겠다!’ 그래서 언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어떤 의도로 제정되었는지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먼저 세계성만찬주일의 의미와 본문의 의미를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성만찬주일의 시작은 193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휴 톰슨 커(Hugh Thomson Kerr) 목사가 담임으로 있었던 셰이디사이드 장로교회로부터였습니다.
커 목사는 1930년 미국 장로교(PCUSA) 총회장을 지냈는데, 이때 전 세계 그리스도인이 교파의 장벽을 넘어 함께 성찬을 나누며 통일성을 경험하는 날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커 목사와 교회의 평신도로 이루어진 청지기 직 관련 위원회의 고민은 이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교회들이 자신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제 예배를 통해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사실은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사실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이후 3년이 흐른 1933년에 비로소 셰이디사이드 장로교회에서 ‘범세계적 성만찬 주일(World-Wide Communion Sunday)’이라는 이름으로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이 예배는 1936년 미국 장로교단 전체로 공식 채택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은 결정적 계기는 1940년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연방교회협의회의 전도 국장이었던 제세 모런 베이더 목사가 이 주일의 의미를 공감하고 지지하면서, 전 세계 기독교 연합 운동으로 확대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드린 제정의 과정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알면, 세계성만찬주일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주일이 제정된 1930년대는 전 세계가 매우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는 1929년에 시작된 경제 대공황으로 극심한 빈곤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유럽에서는 파시즘과 나치즘이 대두되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상황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배타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분열이 인류를 학살과 파괴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지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만찬’이라는 매우 작고 조용한 예식을 통해 세계 평화와 연합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커 목사님의 아들인 도날드 크레이그 커가 훗날 이런 증언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야 이 정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무너져가는 세계를 하나로 붙들어 보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소규모 예배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성만찬은, “악이 아무리 세상을 분열시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절대 끊어질 수 없는 하나의 끈으로 묶여 있다.”, “국가와 민족과 인종보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라는 연대와 저항의 거대한 선포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떡과 포도주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이토록 중요한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언제, 어떻게 거룩해집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서 26절을 통해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바울이 다시 고백한 이 ‘내 몸이다’라는 신비로운 말씀을 두고, 기독교 2천 년 역사는 깊은 고민과 함께 분열도 겪어야 했습니다. 크게 네 가지의 시각이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입니다. 사제가 말씀을 선포하는 순간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실제 살과 피로 완전히 변한다는 시각입니다.
둘째, 루터의 ‘공재설’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빵과 포도주 안에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함께 임재하신다는 시각입니다.
셋째, 칼뱅의 ‘영적 임재설’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변하지 않지만, 성도가 믿음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하게 된다는 시각입니다.
넷째, 츠빙글리의 ‘기념설’입니다. 성만찬은 어떤 신비적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지성적이고 신앙적인 상징일 뿐이라는 시각입니다.
이러한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차이는 충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1529년 말부르크 회담에서 종교개혁의 중심 인물인 루터와 츠빙글리가 만났지만, 바로 이 성찬에 대한 해석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를 정죄하며 갈라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단 위의 ‘빵이 어떻게 변하느냐’가 아니라, 그 빵을 먹은 ‘우리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을 성만찬의 식탁으로 부르십니다. 성만찬의 식탁은 특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사야 55장 1절 말씀은 성만찬의 식탁이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이것이 바로 성만찬의 본질입니다. 세상에서는 자격이 없다고 소외된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 가난하고 목마른 사람들,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을 향해 값없이 열려 있는 ‘열린 식탁’입니다. 그저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과 우리를 이 은혜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마지막 밤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그 식탁에는 완벽한 사람들이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곧 예수님을 부인할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도망갈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서로 누가 더 큰 사람인가 다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팔 유다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 식탁에서 예수님은 빵을 떼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완전히 변화된 다음에 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가 된 다음에 성찬을 베푸신 것도 아닙니다. 아직 흔들리고, 아직 욕심이 있고, 아직 서로 경쟁하고, 곧 배신할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우리가 하나이기 때문에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먹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저는 목회자로서 이 열린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깊은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을 느낍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식 앞에서 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성만찬이 단지 예배당 안에서 은혜를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만찬은 곧 우리의 ‘존재가 변하였음’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신비입니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두고 싸웠던 교회의 아픈 과거보다, 오늘 우리에게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그 빵을 먹은 ‘나’는 과연 어떻게 변하였는가?”
“성찬을 통해 내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드러나고 있는가?”
오늘 요한1서 1장 1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성만찬은 태초부터 계신 그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입술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사건입니다. 생명의 빵을 우리 몸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요한은 그 생명의 말씀을 만진 자들, 곧 성찬에 참여한 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한1서 1:7)
제가 성만찬의 식탁 앞에서 두렵고 조심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셨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제 삶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성만찬의 식탁 앞에서는 겸손해 지지만, 여전히 이기적인 욕망에 타협하고, 불의한 세상의 방식에 침묵하며, 곁에 있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연약함이 저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빛으로 살아가야 할 정체성을 부여받았음에도, 자꾸만 어둠의 자리로 숨어들려는 우리의 이기심과 욕망 때문에 이 떡과 포도주를 대하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두려워집니다.
그러나 은혜는 바로 이러한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빛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에 이 떡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빛 가운데 머물 수 없는 깨어지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오늘 또다시 주님의 찢기신 살과 피를 의지해야만 합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값없이 주어지는 이 은혜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성령께서 우리를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도록 빚어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1933년 피츠버그의 작은 교회에서 시작된 세계성만찬주일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지켜집니다. 세계는 다시 갈라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인종과 종교와 이념으로 사람을 나누고, 배제하고, 차별하고 심지어 학살합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우리는 다시 작은 빵 하나를 바라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가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그 한 덩이 빵을 함께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0:16-17)
우리가 서로 같아서 한 몸이 아닙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민족이 같아서 한 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몸인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같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먹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다름을 뛰어넘는 ‘양극의 용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대하는 성만찬 예식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부르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먹었다면,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찢어진 곳을 잇고, 미워하는 곳에 평화를 만들고, 배제된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굶주린 사람과 빵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몸의 고통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참여할 성찬, 아, 곧 있겠네요. 돌아오는 화요일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거리기도회에서 안규식 목사님이 성찬을 집례하십니다.
이 거리의 성찬을 비롯하여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모든 성찬을 통해, 우리가 예배당을 넘어 삶의 현장에서 빛 가운데로 걸어갈 용기를 얻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덧입혀졌음을 기억하며, 이제는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 스스로 누군가를 살리는 한 조각의 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