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한문덕 목사] 주님의 얼굴을 찾아 – 2023년 3월 12일

역대지상 168-23

[역대기 역사서와 오늘의 상황]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는 역대기입니다. 구약성서에는 서로 다른 관점의 역사 서술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재앙이 내린다는 신명기의 인과응보적 관점을 따라 역사를 서술하는 “신명기 역사서”가 있고, 이와는 또 다른 상황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역대기 역사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역대기 역사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이들이 당면한 과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첫째 과제는 하나님 신앙의 중심 역할을 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어 포로 생활과 식민지 생활 속에서 희미해지고 우상숭배와 뒤섞였던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200년 전에 이미 아시리아 제국에게 망한 북이스라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셋째는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왕도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역대기 역사서를 산출한 이들의 과제는 코로나 이후에 한국 개신교가 어떻게 자신을 세우며, 이 땅에서 어떤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가를 두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들과도 연결됩니다. 코로나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고, 예배와 모임 중심의 신앙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겨 주었습니다. 무너진 신앙, 왜곡된 신앙, 표면적이고 얕은 신앙을 다시 올바르고 단단하고 깊은 신앙으로 성숙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코로나 이후 국제 정치 질서는 크게 흔들렸고, 각 나라는 변화된 세계의 지정학적 관계와 가치 사슬 속에서 저마다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며,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국민과 시민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셋째 우리나라는 특히 북한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미국과 우리나라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남북관계는 매우 답답하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밝은 미래를 확보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자유로운 남북교류 및 궁극적인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특히 인구의 감소로 엄청난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때, 남북의 바람직한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은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미해결 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 평화공동체 운동본부와 평화통일 위원회는 이번 사순절을 맞아 DMZ 평화 순례를 계획하고 강화군 서쪽 불음도로부터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까지 2주 동안 종전 선언과 평화통일을 향한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저도 서울북노회 교회와 사회, 평화통일 위원장으로서 엊그제 금요일에 하루 참가자로 고성에 다녀왔습니다. 경색된 남북의 관계를 다시 뚫어 보자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걷는 길이고,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 걸으며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평화와 통일을 향한 굳센 의지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감사 찬양]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나서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부분입니다. 이 노래는 시편 105편 1-15절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오늘 다윗의 찬송에서 이스라엘 회중을 향하여 주님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라고 외치게 된 계기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104편처럼 피조 세계에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오늘 찬양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신앙의 백성, 자기 백성을 이끄시는 역사 가운데서 행하셨던 일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맺으신 언약을 언급하면서, 선조들이 보잘것없는 나그네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던 시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보살펴 주셨는지를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선조와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고, 지상의 다른 왕들이 함부로 나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의 권력자들에게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사람에게 손을 대지 말며, 나의 예언자들을 해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사람이나 예언자들은 좁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넓게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은 가장 약한 이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어느 누구도 그들을 억압하거나 해하지 못하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거주할 땅을 주시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심을 오늘 다윗의 노래는 드러냅니다. 역대기를 쓴 저자는 이 노래를 통해 폐허가 된 땅에 성전을 짓고, 페르시아의 지배에서도 다시 신앙의 민족,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다윗의 감사 시편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신앙에 대해 몇 가지 나누고 싶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첫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끄시는 분이심을 명확하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적시하면서(14절) 그가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일들을 만민에게 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임을 바르게 알아(14절), 주님을 찾고, 주님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고(11절),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8절), 그에게 노래하고(9절),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라고(10절)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고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계속 이런 명령을 반복적으로 내립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 많은 신앙인이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잘못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40년 넘게 하고, 신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지도 25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제가 한국의 많은 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을 살펴보니, 대체로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 중에는 잘못된 믿음, 자신의 신념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착각하는 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보적인 신앙을 표방하는 분 중에는 하나님께 진정성 있게 믿지 않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당수의 교인은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가 아니라 나의 욕망과 소원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역사의 주관자가 아니라 내 앞길만을 비추시고 나를 지키시는 분으로만 좁게 이해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세상과 이웃을 돌보고,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일을 하기보다 내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로 매몰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살피고 더 나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 공부도 해야 하고, 때로 자신을 드려야 하고, 손해 볼 각오도 해야 하고, 지치고 피곤함을 무릅쓰고 좁은 길을 가야 하지만, 많은 교인은 그저 편하게 행복하게 안전하게 적당히 즐기면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이런 교인을 비판하면서 나름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고 역사와 사회를 위해 나서는 교인 중에도 가만 보면 하나님을 내세우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나아와서 겸손하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얍복강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붙잡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주장하고 내세웁니다.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닮지 못하고, 악을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에 발끈하면서 참을성 없이 미움과 혐오에 쉽게 사로잡힙니다. 한때,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그리스도인들도 한쪽에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에 가두니 부패하고, 다른 한쪽에선 하나님을 자신의 신념에 가두기 때문에 쪼개지기만 합니다.

용서는 온데간데없고, 사랑은 말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견디고 인내하는 그 시간을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모두를 아우르려는 품이 줄어들고, 당하면서도 묵묵히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너무 약삭빠르고, 제 이익에 민감하고, 얄밉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너무 쉽게 부르르하고, 원수 사랑은커녕 형제자매에게도 혐오의 언어들을 쏟아 놓습니다. 여기에 SNS가 한몫하고, 익명성이 작동하고, 군중 심리가 영향을 줍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리숙하고 당하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쓰이는 사람, 가만 보면 남 퍼주기 바빠서 제 실속 하나 못 챙기는, 그러나 속으로는 꽉 찬 사람, 넉넉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그래서 늘 배우려는 사람, 하나님하고 끈질기게 씨름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 중에서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우리 야훼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세상을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가신다고 믿습니까? 하나님의 바둑판에 한 알의 바둑알로 놓이기를 바라십니까? 바둑돌은 전체 판을 읽을 수 없습니다. 바둑알이 하는 것은 바둑기사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요청하실 때 하나님의 바둑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진정으로 기도하시고, 기다릴 줄도 알고, 내어 맡겼다면 그 믿음으로 넉넉한 여유도 지니시길 빕니다.

[주님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라]

둘째 우리는 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해야 합니다. 이것은 첫 번째와 연결되는 것이긴 한데,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을 찾지 않고, 그의 능력을 사모하지도 않는 것이 오늘 한국 교인들의 큰 잘못입니다.

주님을 찾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써 사모한다고 할 때, 많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일상을 넘어선 기적 같은 것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찾고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도 환상이나 환청, 환각처럼 무언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일종의 신비한 종교체험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뭔가 극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처럼 생각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다고 하면서 ‘자연’과 ‘성서’를 말했는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주님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감각이 무뎌졌고, 성서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읽어내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입니다. 방언을 하고, 병자를 고치고, 미래 일을 점치고, 귀신을 쫓아내야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이단에 넘어갑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타리를 통해 이단들을 다루었는데, 이단의 교주들은 어느 정도의 기적이나 예언, 특별한 성서 해석을 해냅니다. 평소에 기이한 것에서만 하나님을 찾던 이들이 이런 것을 보고 그를 메시아로 착각하면서 인생을 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단이 조직적으로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고 심리를 조작하고,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포섭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여기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바른 이해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고, 모든 사건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 한 점에도, 내 삶에서 일어난 작은 일에서도, 문득 떠오른 생각 속에서도 하나님은 활동하시고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의 교인들은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지진이나 태풍, 화산 폭발에만 관심이 많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를 지니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령의 열매들을 맺는 것을 등한시했기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주님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분히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주변 세계에서는 신상(神像)이 신의 얼굴을 뜻했고, 이스라엘에서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거룩한 예루살렘이나 다른 성소를 방문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이 지녀온 하나님의 얼굴이란 사실 눈에 보이지 않게 계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고, 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분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포착될 수 없는 분을 믿는 것이 유대-그리스도교 신앙의 위대한 점이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의 삶이 표피적 감각에만 의존하거나, 말초 신경의 즐거움만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높고 깊은 정신,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애정과 숙성된 몸의 훈련과 무르익은 시간에서만 느껴지는 내공을 기르게 합니다.

한편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얼굴은 나사렛 예수입니다. 자연과 성서는 책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격적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찾아 예배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아 스승과 제자가 구분이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내리는 판단을 기준 삼아 예수님의 분별력과 실천력을 갖춘 제자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인간의 눈에서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십자가의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던 것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신앙이 깊어지면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아 모순을 역설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됩니다. 고난이 영광이고, 약함이 온전함이요,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가장 어두운 밤에 뜨는 별이 가장 찬란하고, 상처에는 더 깊은 상처를 내야 새살이 돋아나며, 죽는 그 자리에서만 부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달은 가장 완벽하게 둥근 보름달이 되자마자 이지러지기 시작하고, 넘어진 자는 일어서고, 일어선 자는 넘어지게 되고, 꼴찌가 첫째이고, 첫째가 꼴찌라는 비밀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고통과 슬픔, 즐거움과 기쁨이 뒤섞인 인간의 세상이 곧 하나님 나라이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원이라는 것을 깨칩니다.

이 모두를 깨달으려면 우리는, 자신이 맺은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고 자손 수천 대에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께 눈을 맞춰야 합니다. 어느 바닷가에 살던 갈매기가 있었습니다. 일생을 올곧은 외길로 살아 온 그가 하루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자신의 곡절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느 날 그 갈매기는 부둣가에 버려진 생선 한 마리를 발견하고 두 발로 낚아채 공중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허기진 갈매기 떼거리가 그것을 뺏으려 결사적으로 그의 뒤를 따라서 날았습니다. 하늘에 높이 뜨기도 하고 해면으로 낮게 비행도 하며 이리저리 피해 오랜 시간 기진맥진 곡예를 하다 지친 갈매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 움켜 진 먹이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수십 마리의 떼거리는 그것을 잡으러 쏜살같이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데, 그때 그 갈매기는 홀연히 구만리 푸른 하늘이, 가없이 펼쳐진 그 창공이 홀로 자기 몫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썩은 생선 하나를 포기하는 순간 그 넓디넓은 창공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아무와도 소유권으로 다툴 필요가 없는 ‘하늘’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갈매기는 그날 그 하늘을 제대로 만났던 것입니다. 그날의 경험 이후 그 갈매기는 외길을 살아왔노라고 제자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주님의 얼굴을 찾고 계신 전국의 성도 여러분! 자리 하나 놓고 다투며 재산을 탐하는 이 썩은 세상을 포기할 때, 때 묻지 않은 ‘푸르름’이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그 ‘푸르름’을 보는 날까지 살아가는 일종의 수련장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제대로 찾아 그를 예배한다면 우리는 어려움에 처해서 용맹하고, 운명 앞에 맞닥뜨릴 때도 고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여러분과 저는 주님께 노래하며 날마다 구원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세상을 만드시고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주님께서 하신 일을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노래하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전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주님은 우리가 약하고 작고 힘이 없었을 때, 우리가 이리저리 떠돌며 보잘것없는 나그네 삶을 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돌보시고 이끄셨습니다. 주님은 악한 자들의 횡포와 불의한 자들의 폭력과 무례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난장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 우리가 주님을 찾고, 주님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며, 주님의 얼굴 앞에서 예배하겠습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잘 살아가겠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모든 곳에서 보겠습니다. 침묵으로 하시는 말씀을 놓치지 않고 듣겠습니다. 주님의 숨결과 손길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완성해 나가겠습니다. 늘 우리 곁에서 스승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나침반 바늘이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듯, 뭇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 우리가 언제나 주님을 향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건강과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안식처와 따뜻한 집을 주시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고쳐 주시고, 지극한 사랑으로 이 세상의 악한 것들을 없애시며, 고난과 멸시, 조롱을 감내하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모든 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들고 나왔습니다. 오늘 예물이 가인의 예물이 아니라 아벨의 예물이 되길 원합니다. 이 예물이 우리 교회와 이 사회의 필요한 곳곳에 알맞게 쓰이게 하소서. 주님께 물질을 드림으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기억합니다.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선교할 때 주님 영광 받으시고, 온 세상 사람들이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얼굴을 찾아 그를 예배하십시오.

* 축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의 빛을 비추시기를

그리하여 대낮에는 눈이 어두워지지 않고,

의도적으로 어둠의 그늘로 가지 않기를,

사랑의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으시기를,

그리하여 차가워진 영혼이 따스해지고

매서운 눈길이 부드러워지기를

평화의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기대와 설렘을 주시기를

그리하여 지치고 처진 마음이 깨어나고

멈추었던 발걸음이 다시 푸른 대지를 두드리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