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9장 9-18절, 로마서 12장 9-21절
오늘 본문은 교단 교회력에 따른 평화 통일 주간입니다. 우리는 평화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그것을 떠받쳐 주는 중요한 가치인 사랑과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국제 정치에서나 친구 관계, 그리고 교회 생활과 가족 생활에 이르기까지 갈등과 평화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사랑과 정의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평화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큰 틀에서 평화가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정의와 사랑의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평화는 무엇입니까? 평화란 단순히 싸우지 않는 것일까요? 단순히 싸움이 없으면 평화로운 것입니까? 싸움이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냉랭하고 마음이 닫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싸움이 없지만 힘센 사람이 완전히 억누르고 지배하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는 무엇입니까? 평화란 한 공동체 안에서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이익과 관심이 공동체의 질서 속에 최대한 반영되어, 각자가 기대하는 질서 안에서 안정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의 모든 목소리가 가능한 한 들려지고, 그 안의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일을 하며 자기 몫을 받고, 전체 공동체가 조화롭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평화를 ‘질서의 조화’라고 말했습니다. 평화는 곧 전체가 그 부분들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해 바람직한 질서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는 이를 위해 정의와 사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입니까? 흔히 듣는 말이지만 막상 정의와 사랑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이 옳고 그름, 자기 이익을 넘어서서 타인을 완전히 품어주고자 하는 이상이라면, 정의는 옳고 그름, 각자의 이익은 물론 타인의 이익과 이해관계까지 모두 고려하여 안정적인 공존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사랑은 남을 위해 나를 비우고 버려서 그를 채워주는 삶이라면, 정의는 옳고 그름을 생각하며 나와 당신이 각각 독립적으로 서면서도 서로의 이익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사랑은 기독교 윤리의 이상이며, 정의는 현실의 죄 속에서 피할 수 없는 타협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사랑과 정의가 모두 필요합니다. 정의 없이 사랑만 있다면 착취적인 관계만 남고, 사랑 없이 정의만 있다면 냉정한 계산만 남게 됩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관계가 정의라면, 어떻게 해도 안 될 때 당신을 위해 양보하고 내려놓는 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둘 중 하나만으로 관계가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두 본문, 구약의 레위기와 신약의 로마서는 정의와 사랑을 각각 대표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평화는 반드시 정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구성원에게 돌아갈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라면, 공동체의 평화는 정의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평화는 언제나 깨어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공동체 구성원이 실현해야 할 정의의 원칙을, 로마서는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린 공동체가 살아가야 할 사랑의 원칙을 보여줍니다.
레위기 본문은 출애굽을 경험한 공동체의 정체성, 즉 ‘우리 공동체가 누구인가’를 형성하기 위한 삶의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과 같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빠져나온 경험은 언제나 새로운 삶의 각오를 새기게 합니다. 종살이를 하던 다양한 떠돌이 히브리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얻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입니다. 때로는 ‘성결’로 번역되기도 하고 ‘성스럽다’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와닿지 않습니다. 성결이라 하면 때가 묻지 않은 순수와 결백을 떠올리고, 거룩이라 하면 무게 있고 엄숙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둘 다 ‘카도쉬’의 의미, 곧 성스러움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성스러움은 본래 제사에서 바쳐진, 헌신된 제물에 관한 개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독특하게 구별된 자리를 차지하고, 접근이 제한되어 거리를 두게 하면서 느껴지는 낯섦과 선망, 그리고 때로는 두려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입니다. 예를 들어, 신비주의 이미지를 지닌 연예인을 만날 때나, 청와대와 같이 접근이 금지된 곳에 들어설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레위기와 로마서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의 핵심 정체성이 바로 이런 성스러움, 곧 거룩함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레위기는 성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언약 백성의 거룩함을 강조하고, 로마서는 자기를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 역시 거룩한 산 제물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제물은 흔한 존재 가운데서도 제사라는 고귀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고, 그 구별 속에서 귀하게 여겨지며 힘을 부여받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경험하면서, 정의와 사랑이라는 가치를 위해 자기희생의 삶을 살도록 구별되고 성별되며, 귀하게 여겨지고, 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산 제물로 바쳐 이루어야 할 정의와 사랑의 삶은 무엇입니까? 먼저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레위기 19장은 거룩함의 기본 원칙이 정의임을 드러냅니다. 1-8절은 십계명에 관한 이야기이고, 9-18절은 더 구체적인 원칙들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루어야 할 거룩함의 핵심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과 배려가 있으며, 이것은 시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은혜나 호의가 아니라 권리 보장으로 봅니다. 이민자, 뜨내기, 하루벌이 노동자, 장애인 등 취약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이를 실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산업재해로 외국인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건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안전권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본문에서 약자에 대한 명령마다 “나는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이 따라붙습니다. 이는 첫째,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야 한다는 뜻이고, 둘째, 그 거룩함이 정의로 드러나야 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를 주목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로마서 본문이 보여주는 사랑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12장 9절과 10절에 따르면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하며, 서로를 동지이자 형제로서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대하며, 서로 먼저 높여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그것은 곧 남을 위해 자신을 버려 종이 되신 그리스도의 삶이 나의 삶의 형태가 되고, 내가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어 사랑하며 섬길 때 생겨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먼저 주님을 섬기는 마음, 즉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분의 지체이자 도구로서 나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은 우리가 나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의 인격이 되고자 할 때, 나의 유익이나 편안함이 아니라, 주어진 모든 것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주님께 드리려는 마음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역경을 만날 때, 이를 오히려 그리스도를 닮는 계기로 여기고 소망을 품으며, 인내하고, 기도하며 이겨 나가야 합니다. 역경과 환난 속에서 사랑의 일을 위한 도구로 충실하게 살기를 기도하며, 소망하고, 그 속에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버리고 종의 정체성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 때, 다른 이를 위해서도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 드리는 종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 앞에서도 환대하고, 누구와도 공감하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며, 누구와도 함께 화목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며 사랑의 삶을 산다는 것은, 사랑 안에서 ‘나’가 사라지고 ‘우리’가 되는 것이며, 나와 당신이 서로를 품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3절에서 보듯이,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서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며 베풀 수 있고, 서로 즐거워하며, 함께 슬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함께 낮은 자리에 머물며,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 겸손함을 갖게 됩니다. 사랑의 삶을 산다면 가해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피해를 감수하게 하기에, 불필요한 상처는 덜 받지만, 때로는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로마서 12장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 갚음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합니다. 인간이기에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학대와 피해에 대해 감정적 앙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헌신하는 마음은 부정의한 현실 속에서도 보복심과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사랑의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정의와 사랑의 삶에 매진함으로써 거룩한 삶을 구현하고,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냉정한 개인주의로, 사랑 없는 정의는 버거운 집단주의로 흐릅니다. 두 가지는 반드시 서로를 보완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정의를 지키면서도 사랑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드러날 것입니다.